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검수 작업을 거치고 있는 미 달러화.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이 지난달 29일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양국 외교관계가 복원되며 8년 만에 통화 스와프 협정이 진행된 것이다. 다만 이번 한-일 통화 스와프는 ‘달러 스와프’ 방식으로 체결됐다. 일반적인 통화 스와프는 해당국 통화를 직접 교환하지만 ‘달러 스와프’는 달러를 매개로 진행된다. 만약 한국이 원화를 빌려줄 경우 일본은 달러를 제공하고, 일본이 엔화를 빌려줄 경우 한국은 달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달러 스와프 형태의 계약을 체결한 배경에는 엔화 가치 평가절하 상황이 있다. 엔화는 현재 엔-달러 기준 145엔 수준으로 연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에 비해 엔화 가치가 큰 폭 절하된 것이다. 원-엔 재정환율 역시 최근 100엔당 900원선이 장중 한때 깨졌을 만큼 하락 폭이 깊다. 이 때문에 일본 중앙은행은 환율을 안정시키고자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일본 재무성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 안정화를 유도했고, 현재 일본 재무장관은 “과도한 엔화 약세 움직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구두개입에도 나선 상태다.
달러 스와프는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엔화 환율 안정을 유도할 수 있는 하나의 보험이 될 수 있다. 일본이 한국에 엔화를 빌려주고 달러를 받게 된다면 일본 내 달러 공급이 많아지고 엔화 공급이 줄어 엔-달러 환율 상승세가 제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6월 집계된 일본 외환보유고는 1254조달러로 충분한 수준이고, 경상수지 역시 흑자를 기록 중이기에 단기간 내 스와프 계약을 이행할 가능성은 적다. 다만 외환시장이 극단적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경우 달러 스와프는 엔화 방어를 위한 보험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엔화가 주요국 통화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원인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일본 중앙은행의 초완화 통화정책이다. 글로벌 중앙은행이 높아진 물가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꾸준히 인상한 반면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0.1%의 낮은 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수익률곡선관리(YCC) 정책을 통해 일본 10년물 국채금리 상하단을 -0.5%에서 0.5%로 고정했다. 돈의 가치를 대변하는 금리 수준이 주요국에 비해 낮고, 국채금리 상단 역시 제한돼 있는 만큼 엔화는 주요국 통화 대비 평가절하됐다.
일부 투자자와 헤지펀드는 초완화 통화정책이 지속될 수 없음에 베팅하고 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연초 4%를 넘었을 만큼 일본과 인플레이션이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가 수익률곡선관리 정책금리 상단을 기존 0.25%에서 0.5%로 상향조정 한 것도 이러한 기대를 강화했다. 그러나 올해 6월 일본 통화정책회의 결과는 통화정책 변화에 대한 시장 기대를 일축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현재의 일본 경제는 완화적 금융환경을 유지할 필요성이 높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에 엔화가 약세 흐름을 마치고 돌아설 것으로 기대한 포지션 중 일부가 청산되었고, 엔저 흐름은 강화됐다.
두 번째 원인은 엔캐리 트레이드에서 찾을 수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란 엔화를 차입해 달러화로 교환 후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금리가 낮은 엔화를 차입해 금리가 높은 달러 자산에 투자할 경우 높은 차익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시장 내 엔화 공급이 많아지고, 동시에 달러 수요 역시 높아진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연내 두 차례 연속 정책금리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연 5.25%인 미국 정책금리 상단 수준을 최대 연 5.75%까지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일본과 미국의 정책금리 격차는 최대 5.85%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엔캐리 트레이드를 진행하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NH선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