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이중대표소송도 요구
재벌총수 일가가 우량상장기업의 사업기회를 이용해 개인이익을 챙기는 ‘회사기회 편취’는, 회사의 이익을 갉아먹고 총수 일가 외에 다른 외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이런 행위를 사전·사후적으로 엄격하게 통제한다.
우리 상법도 통제규정이 있기는 하다. 상법 397조에는, 주식회사의 지배주주나 등기이사에게 경업(경쟁관계에 있는 업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에 따라 처벌된 사례는 한번도 없다. 법조항 자체가 ‘회사기회 편취’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규정한데다 사법당국의 의지도 부족한 탓이다. 재벌기업 경영진들은 회사기회 편취가 문제가 되는 행위로 결코 보지 않는다.
참여연대 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총수 일가들은 2~3세가 지배주주나 등기이사가 되기 전부터 움직인다. ‘경쟁관계에 있는 업종’ 말고도 총수 일가의 배를 불려줄 사업들이 널려 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우, 95년 이후 회사기회 편취로 볼 수 있는 행위가 30건에 이르는 것으로 참여연대 조사에서 드러났다.
참여연대는 재벌총수 일가의 신종 경영세습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회사기회 편취를 막으려면 상법을 개정해 명확한 금지조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 입법청원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변호사)은 “대상업종의 범위를 좀더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법적 책임대상도 등기이사 뿐만 아니라 회사의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으로 넓혀야 한다” 고 주장했다. 또 총수 일가가 출자한 비상장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할 때 사전에 독립된 이사들의 심사 및 승인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부분 재벌기업의 사외이사들은 총수 입김으로 임명되는 게 현실이다. 또 총수 일가의 개인출자로 설립한 비상장회사의 경우에는 법적 책임을 물을 주체가 없다. 이는 사전적 통제장치가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원인이다. 따라서 ‘시장을 통한 사후적 통제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는 상장기업의 주주가 비상장 출자회사 이사들의 법위반 행위에 대해서도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이중대표소송제도’의 도입을 요구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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