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 회의에 참석한 대기업 대표들. 왼쪽부터 허창수 지에스 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 구본무 엘지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이수영 경총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현대차, 분위기 반전 기대
삼성, 꺼진불 살아날라 조심
삼성, 꺼진불 살아날라 조심
청와대 대-중기 상생협력회의
삼성·엘지·에스케이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참석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가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렸다.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30대 그룹에서 중소기업과의 협력 사업에 올해 1조3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협력 대상도 1차 협력업체에서 2차 협력업체로, 제조업 위주에서 유통·에너지 분야로 확대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대-중소기업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설과 장비를 공동 활용하는 데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무 엘지 회장은 “성과 공유제를 확대하고 보육시설을 협력업체 여성근로자까지 사용하도록 해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상생·협력이 주제였지만 재벌 총수들에게 마음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재계 서열 2위인 현대·기아차그룹 총수의 구속을 계기로 재벌그룹의 편법 경영권 승계 문제가 도마에 오른 상황인데다 몇몇 재벌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진행 중이어서 긴장의 끈을 풀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4대그룹의 한 임원은 “상생과 협력을 위한 회의라고 하지만 현대차 사태로 그룹마다 속앓이가 깊은 데 마음이 편할 리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상생협력회의’로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는 눈치다. 경영권 편법 승계와 비자금 조성 등과는 별개로 정몽구 회장의 구속을 부른 이유의 하나가 협력업체들에 과도한 납품단가 인하 압박 등 책임 전가가 꼽히고 있던터라 현대차로선 이를 만회할 기회로 작용한 셈이다. 현대차는 이날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이전갑 기획총괄담당 부회장이 참석해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뼈대로 한 ‘상생 보따리’를 풀어놨다. 그룹 관계자는 “많은 곳에서 정 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개최돼 분위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건희 회장의 청와대 회의 참석은 지난해 5월 이후 꼭 1년 만이다. 삼성은 이 회장의 참석에 앞서 ‘8천억원 사회헌납’ 절차 이행에 이어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결성 등 2월7일 발표한 대국민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청와대 상생·협력 회의에 맞춰 철저히 준비한 모양새다. 그럼에도 삼성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다. 이 회장의 청와대 회의 참석을 계기로 그동안의 사회적 부담을 모두 털어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남은 과제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삼성에버랜드 편법증여 수사는 검찰 의지에 따라 지방선거 이후 이 회장이 직접 수사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삼성이 ‘8천억원 사회헌납’용으로 이 회장의 막내딸 윤형씨 지분으로 내놓은 에버랜드 주식의 가치 산정과 부당이득을 둘러싼 계산법도 논란의 불씨로 남아 있다.
비상장사를 이용해 편법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부를 축적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다른 재벌기업들도 상생경영의 뒤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복잡하게 얽힌 재벌그룹들의 속사정과는 달리 참여정부와 재계와의 관계는 서로 필요에 따라 외형적으로는 더 진전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전경련은 “대기업의 상생경영 투자 확대가 협력업체의 역량을 키우고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려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