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월1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 등 15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출자총액제한제와 지주회사제 요건 등에 대한 재계 의견을 듣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납품단가 최대 60% 부당하게 깍은 혐의 적발 제재 없이 ‘없던 일’
삼성전자건 1년넘게 처리 미뤄…‘상생협력’ 주무부서 무색
삼성전자건 1년넘게 처리 미뤄…‘상생협력’ 주무부서 무색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 계열사들이 중소 부품업체들을 상대로 납품단가를 최대 60%까지 부당하게 깎은 혐의를 적발하고도 처벌하지 않은 것으로 25일 뒤늦게 밝혀졌다. 또 공정위는 삼성의 다른 부당 납품단가 인하 사건을 적발하고도 1년이 지나도록 처리를 미루고 있다. 공정위는 2004년 11월 삼성 계열사로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인 세메스가 36개 중소 부품업체들을 상대로 정상적인 협의 없이 부당한 방법으로 납품단가를 평균 14.7%나 깎아 원가상승 부담을 떠넘긴 사실을 적발했다. 일부 부품업체들은 납품단가가 65.2%나 깎인 것으로 조사됐다. 세메스는 공정위 조사 당시 모회사인 삼성전자와 짜고 납품단가 인하 사실을 숨기고자 장부까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방해 행위가 공정위에 적발돼 삼성전자와 세메스 직원 3명이 지난해 말과 올해 2월에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부당 납품단가 인하 사건의 처리를 1년4개월이나 끌다가 올 2월에 위원회에 상정했다. 그리고 아무런 제재 없이 ‘심의절차 종료’ 조처를 내려, 사실상 ‘없던 일’로 끝냈다. 정재찬 공정위 기업협력단장은 “조사 부서에서는 부당 납품단가 인하 혐의로 제재의견을 냈으나, 위원회에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제재 없이 사건을 종료했다”고 해명했다. 세메스 쪽은 “단가인하는 부품업체들과의 합의로 이뤄졌고, 단가를 오히려 올려준 곳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메스가 납품단가 인하 사실을 숨기려고 장부까지 조작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위 간부는 “자료를 조작한 것은 제재하고도, 정작 부당 납품단가 인하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봐주기”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세메스와 함께 부당 하도급단가 인하가 적발된 두산인프라코어 등 다른 기업에 대해서는 지난해 9월 제재를 내렸다. 공정위는 또 지난해 4월 불공정하도급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된 삼성전자의 엘시디 부품 부당 납품단가 인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여, 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1년이 넘도록 사건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위 직원은 “조사 결과, 삼성전자는 30여 부품업체들을 상대로 납품단가를 평균 15% 안팎으로 부당하게 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조사부서에서는 지난해 말 보고서 초안까지 작성했으나, 윗선에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른 사건은 신속히 처리하는 데 유독 삼성 건은 시간을 끌고, 아무도 독려하지 않는다”며 “이렇다보니 삼성전자가 공정위 조사를 받은 뒤에도 계속 납품단가를 깎고, 현대차가 아예 납품단가 인하를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에 공정위 쪽은 “세메스 건은 앞으로 증거가 보충되면 다시 제재 절차를 밟을 것이고, 삼성전자 건도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고 공식 방침을 밝혔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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