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재조정을 위한 숨고르기인가, 동반침체를 알리는 신호탄인가?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미국발 금리인상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를 두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나스닥 지수는 거래일로 8일 연속 떨어졌고, 석유와 금을 포함한 원자재 가격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상대적 고수익을 노려 신흥시장(이머징마켓)으로 몰렸던 자금들은 달러와 미 국채 등 안전자산을 향해 대이동을 시작했다. 5월 초에 견줘 신흥시장 주가는 평균 15%, 선진국 주가는 평균 7%나 떨어졌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그 기폭제가 됐다. 지난 5월 초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애초 예상치보다 높게 나오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증폭됐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거듭 인플레이션 위험을 강조하며 추가적인 금리인상 가능성을 높임에 따라,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리인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국제유동성 증가세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돈줄인 유동성은 세계 경제의 윤활유에 비견된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연준이 금융긴축정책을 취한 뒤 6개월 만에 경기가 본격적으로 둔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재임 시절 이런 상황은 크게 세 차례(1989~90년, 94~95년, 99~2000년) 있었다.
세계 경제에서도 이런 현상은 발견된다. 2000년 이래 풍부하게 유지되던 G5(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국제유동성은 지난해부터 증가세가 둔화됐고 올 1분기 이후에는 둔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영국의 투자자문회사 앱솔루트리턴파트너스는 2001년 이후 20~30%대를 유지하던 국제유동성 증가율이 최근 들어 10%대 이하로 떨어졌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세계 경제는 국제유동성 증가세가 둔화되는 시기엔 어김없이 위기를 맞았다. 경제분석기관인 게이브칼이 미국의 대외지급준비금을 기준으로 국제유동성 추이를 분석한 결과, 남미 경제위기(82~83년)와 미국의 저축대부은행 파산(90년대 초반), 그리고 아시아 외환위기(97~98년)는 모두 국제유동성의 증가세가 크게 떨어졌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저금리 기조가 막을 내리고 있는 현시점도,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고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국지적인 경제위기가 발발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경험이 그대로 되풀이될 것인지에 대해선 반론도 많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경제분석팀장은 “미시적 차원에서 기업과 가계의 재무건전성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0년 이전 위기 당시 미국 기업들의 현금흐름은 대부분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자산은 2천억달러를 넘어선다. 중국 요소도 있다. 홍춘욱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팀장은 “동구권이 새로이 세계시장에 편입되고 중국이 등장한 90년대 이후 절대적인 인플레이션 위협은 거의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관건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펀더멘털인 미국 경제의 향방에 달려 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미국 주택경기는 그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2000년 이후 장기호황을 이어오던 주택경기는 16번에 걸친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모기지론 금리가 오르면서 뚜렷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3년 안에 주택건설 투자 비중이 낮아지면서 경제성장률을 매년 0.75%포인트씩 떨어뜨릴 것이라 전망했다. 주택경기 둔화에 의해 촉발된 경기둔화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송태정 연구위원은 “미국 경제의 둔화 폭이 예상외로 커질 경우 중기적으로 세계 경제는 둔화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가 실리는 재조정 과정을 경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하반기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콜금리 인상과 맞닥뜨리게 된 한국 경제 역시 앞으로 1~2년 정도 경기 둔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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