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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국경제 쥐락펴락 ‘모피아’의 마법

등록 2006-06-28 19:22수정 2006-06-28 19:49

옛 재무부 출신들 끈끈한 연대로 영향력 막강
외환 헐값매각 등 게이트 ‘단골’…개혁론 일어
“국내 금융기관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이헌재 펀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이 전 부총리가 서두를 꺼내더구만. 아직 관련 법률도 정비가 안됐는데 가능하겠느냐고 묻자, ‘그건 내가 재경부에 얘기하면 되니까 당신들은 돈 많이 모으는데만 신경을 쓰라’고 하더라.”

금융계 한 고위인사가 전하는 일화는 ‘이헌재 사단’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한다. 이른바 ‘이헌재 사단’은 이씨를 보스처럼 따르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경제분야 요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사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과거 이씨와 같이 일했거나 경기고-서울대라는 학연으로 엮여있지만, 그 힘의 원천은 ‘모피아’로 지칭되는 금융관료들이다. 최근 외환은행 매각 관련 감사와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태 등을 계기로 전·현직 금융관료들의 권한남용과 비리연루 사실이 불거지면서 모피아 개혁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모피아는 좁게보면 엣 재무부 ‘이재국’(현 재경부 금융정책국) 출신 금융관료들을 뜻하지만, 넓게 보면 옛 재무부(현 재경부) 출신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금융관료들이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원천은 금융당국이 틀어쥐고 있는 규제에 바탕한 ‘관치금융’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말 한마디에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이 단번에 경색되고, 관치금융 논란이 제기된 것은 단적인 예다. 지난 2003년 엘지카드 사태 때는 재경부와 금감위가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엘지카드에 대한 자금지원을 사실상 강요하기도 했다. 금융산업의 특성상 적절한 수준의 정부 규제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모피아는 불필요해진 규제까지 여전히 틀어쥐고 응집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재경부 출신의 한 금융계 인사는 “한국이 금융강국으로 나아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게 금융관료”라며 “금융권을 옭죄는 불필요한 규제와 지시가 너무 많다”고 진단했다.

모피아는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재경부와 청와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정부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나아가 산하 금융기관과 심지어 민간 금융회사의 상층부까지 점령해서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1998년 금융감독기구 개편으로 출범한 금융감독위원회의 경우 역대 위원장 6명이 모두 옛 재무부나 재경부 출신이다. 3개 국책은행장,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상호저축은행연합회 등의 기관장도 모피아다. 모피아의 대부분은 경기고-서울대 출신인데, 이런 ‘비공식 관계’는 실제업무에도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몇년 전, 증권 관련 한 기관은 노조가 재경부 출신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막상 비재경부 출신이 온 뒤로 기관의 위상이 떨어지자 나중에는 힘있는 재경부 출신을 기관장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한 금감원 출신 인사는 “어쩌다 외부 인사가 수혈돼도 ‘왕따’를 당할 수 밖에 없다”며 “자기들끼리 ‘저 선배는 실력있다. 청렴하다. 천재다’라고 추켜올리고 유포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들이 최고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선후배가 돈독한 우의를 바탕으로 끼리끼리 봐주는 구조에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한 금융계 고위인사는 “공직생활 30년동안 번 돈보다 나와서 3년간 번 돈이 더 많다”며 “선배에게 밉보이면, ‘자리’가 안 돌아올 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경제기획원이나 청와대 경제라인의 견제 기능이 아예 사라지거나 대폭 약화된 것도 모피아 독주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다 금융은 대개 비밀을 관행으로 하기 때문에 밀실회의가 일반화돼 비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 한 금융계 인사는 “금융관료들은 늘 공익을 위해 모든 결정을 내린다고 하지만, 때로는 공익과 개인의 사익이 일치되는 때가 있다”며 “법체계 정비 및 추진 이면에는 이익집단들의 치열한 로비가 숨어있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권태호 안창현 석진환 기자 ho@hani.co.kr



‘모피아’ 독주 막으려면 독립적 금융감독기구로 상호견제 필요

지난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든 취지는 재경부에 집중된 금융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재경부가 상위목적(경제정책)을 위해 하위목적(금융 건전성)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크고, 그것이 외환위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위 사무국 대부분이 금융정책국을 중심으로 한 재경부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오히려 모피아의 힘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많다.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가 외환은행 헐값매각 과정에서 손발을 척척 맞출 수 있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김대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감독기구는 한국은행과 같은 독립구조로 가야 한다”며 “재경부는 법률 제청권을 갖고, 금감위·금감원은 법에서 정해진 범위를 넘어서는 월권을 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상호견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관료들의 자의성이 개입될 수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또 재경부가 외환은행이나 엘지카드 사태와 같은 위기시 선제대응을 할 때도 법적인 제도와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법규정이 제대로 정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영 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 부위원장(군산대 경제학과 교수)은 “우리나라의 금융제도는 모호한 부분이 많아 관료들의 해석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며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니 제도를 해석하는 사람과 인맥이 힘을 발휘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감위 사무국과 금감원 직원의 인력충원 구조를 좀더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제는 재경부 출신이 아닌 인사로 금감위원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박현 석진환 기자 hyun21@hani.co.kr


김용환 ‘원조’…이헌재 2세대 공룡 재경원때 외연 더 넓혀

모피아의 ‘화려한 역사’
모피아(MOFIA)란 재정경제부(MOFE)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모피아의 시작은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평가가 많다. 김 전 장관은 66년 이재국장을 거쳐 차관, 장관에 올랐고, 이헌재, 임창렬 전 부총리 등 이른바 2세대가 그 뒤를 이었다. 애초 김대중 전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이 없던 이헌재 전 부총리를 대통령 당선자 시절 연결시켜준 사람도 김 전 장관이라는 얘기가 있다. 최근 현대차 불법로비와 관련해 구속된 우병익 KDB파트너스 대표,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유성 전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 등도 모두 이재국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다.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주인공이었던만큼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모피아의 운명도 영향을 받았다. 82년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당시엔 재무부 이재국 라인이 대거 경질되기도 했다. 94년 12월 김영삼 정부는 경제기획원(EPB)과 재무부를 한데 합쳐 재정경제원을 탄생시켰다. 경제정책 수립과 금융·세제 등 정책집행이 한 지붕 아래서 이루어지면서 모피아라는 권력집단의 테두리는 좀더 넓혀졌다. 경제기획원이 주로 맡았던 내부견제와 균형도 사라졌다. 국가부도 위기에까지 내몰렸던 1997년 외환위기의 싹도 이런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많다. 김대중 정부는 98년 2월 공룡조직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로 개편하고 예산(기획예산처), 금융감독(금융감독위원회)을 별도조직으로 떼어냈다. 하지만 당시 금감위 신설에 강력 반대했던 재경부가 적극 찬성으로 급선회한데서 예상됐듯이, 재경부와 금감위 사무국은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와 교류를 통해 사실상 ‘두 지붕, 한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참여정부 초기 개혁 성향의 학자들이 청와대 정책라인에 포진하면서 모피아의 위세는 잠시 주춤하는 듯 했다. 하지만 집권 2년차부터 청와대 경제라인 역시 재경부 인사들로 채워졌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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