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로펌 ‘기업 방패’ 떠맡나

집단소송때 피고쪽 소송대리만 하기로
“기업이 주고객이라…”내부방침 정해

국내 대형 법률회사(로펌)들이 올해부터 시행되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 때 피고 쪽인 기업들의 소송대리만 맡기로 내부 방침을 세우고 있어, 소송을 제기하는 쪽에 적잖은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6일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일부 대형 로펌들이 분식회계 등으로 집단소송이 제기되더라도 원고 쪽인 투자자들의 소송대리는 맡지 않고 피고 쪽인 기업들의 소송대리만 맡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 대형 로펌들은 대부분 그런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5대 로펌에 속한 한 변호사는 “대형 로펌에게는 기업이 주 고객인데 집단소송에서 원고 쪽 소송대리를 맡아 기업을 공격할 경우 이해상충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으로 변호사 중에서 전문 소송꾼이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일부 우려가 있었는데, 대형 로펌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5대 로펌에 있는 변호사도 “어차피 기존 거래관계를 중시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국내 10대 또는 20대 로펌들은 이미 특정 그룹이나 대기업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런 영업전략을 택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증권 집단소송제가 시행 중인 미국에서도 대형 로펌들은 기업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고, 공격하는 역할은 증권 집단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몇몇 로펌만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행 증권 집단소송제의 경우 각종 남소 방지장치가 과도하게 도입돼 소송제기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 로펌들이 이런 영업전략을 펴면, 원고 쪽이 좋은 법률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해 제도의 실효성을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누리법무법인의 김주영 변호사는 “앞으로 증권 집단소송과 관련해 원고 쪽 소송대리를 하는 곳은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소규모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에 국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김동훈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