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있는 분들 성장쪽 집착”
경기부양 압박하는 여권에 화살
“물가 주시” 금리인상 무게실어
경기부양 압박하는 여권에 화살
“물가 주시” 금리인상 무게실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이례적으로 통화정책 운용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상세히 밝히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정책을 희생시킬 수 없음을 분명히했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경기진작을 내세워 금리 동결 압박을 넣고 있는 것에 대한 이 총재의 반박으로 받아들여져 주목된다.
이 총재는 12일 한국금융연구원이 마련한 금융경영인 조찬회 특별강연을 통해 “정책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나치게 성장쪽에만 경도되어 있다”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이 총재는 “금년도 성장률은 사실상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통화정책 수단을 통해 성장률을 변화시킬 여지가 적다”는 말로, 경기부양을 위해 긴축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 총재는 “정부여당의 경기부양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얘기냐”는 물음에 대해선 “장기적인 성장잠재력 측면에서 통화정책이 기여할 부분이 없다는 뜻”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간 몇 차례 이어진 금리인상으로 인해 과잉 유동성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유동성에 여유가 있다는 게 이 총재의 기본 생각이다. 이 총재는 “현재 통화정책의 기조는 지난 시기에 미진했던 것을 시정하는 과정”이라고 말해 추가적인 금리인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아냈다. 아울러 이 총재는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과 통화당국이 관심을 갖는 물가 수준은 최소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있다”고 거듭 상기시키면서 현 상황에서는 경기보다는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이는데 무게를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날 이 총재 강연에선 “성장잠재력이란 통화당국의 입장에선 주어진 것일 뿐, 통화당국이 바꾸기 힘들다”는 대목에서 특히 국내외 금융기관 최고경영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 총재는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부진한 건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서 전략을 상실한 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통화정책의 영역을 넘어서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일시적인 경기부양책만으로는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없는만큼, 통화정책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통화정책 운용과 관련해 강성 기조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이 총재의 이 날 발언은 경기부양을 둘러싼 당정의 움직임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이 총재가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들어 통화정책이 힘을 보탤 수 없다는 뜻을 밝히긴 했지만, 긴축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기 때문이다.
당장 8월10일 열릴 금통위에서 또 한차례 금리가 인상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한은이 경제안정이라는 목표를 물가안정으로 지나치게 좁혀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홍춘욱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팀장은 “경기둔화 가능성이 분명한 이상 통화당국은 채 피지도 못했던 경기가 서둘러 꺼지지 않도록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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