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사리기로 투자처 못찾아…재계선 “정부 규제로 위축” 기업의 투자 부진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낮춘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투자 부진의 원인을 기업 내부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각종 규제나 반기업정서 등 기업의 외부 요인들이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재계의 일반적 주장과는 달리, 기업가정신의 실종이나 투자전략 부재 등 내부 요인을 강조한다. 이른바 투자 부진 내인론의 선봉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있다. 이 총재는 28일 제주에서 열린 21세기 경영인클럽 제주포럼 강연에서 “기업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증대하고 보수적 경영 형태가 확산되면서 설비투자 증가율이 크게 떨어졌다”면서 “기업인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적극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총재는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기업가의 직감을 ‘야성적 충동’이라고 표현한 것을 인용하며, 불확실한 환경을 뚫고 가는 무기는 바로 기업가정신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강연에서도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근본 이유는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서 우리 대기업이 어디에 투자할지 판단을 못하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도 이날 전경련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하계포럼에서 “기업인들이 진취적 기상을 바탕으로 창조적 파괴자로서 새로운 활력을 찾는데 앞장선다면 우리경제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며 투자 부진의 책임이 정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내비쳤다. 기업인 스스로도 기업의 책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손경식 상의 회장은 지난 20일 기자들과 만나 “투자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재룡 한은 기업통계팀장은 “제조업체의 유형자산증가율은 일정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며 “설비투자 증가세가 과거에 비해 다소 떨어진 데는 외국인 지분이 늘어나면서 안정적인 수익모델이 나타나지 않는 한 과잉투자를 자제하는데다 차입경영을 회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에 따르면 올 2분기 중 설비투자는 1분기에 비해 2.8%, 지난해 동기 대비 7.7% 늘어나는 등 꾸준하다. 하지만 재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투자 부진의 원인을 정부와 사회 등 외부에서 찾고 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이날 최고경영자 하계포럼 개회사에서 “경영에 부담을 주거나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이중대표 소송제, 집행임원제 등의 도입은 재검토되어야 하고 출자총액제한제는 폐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회장은 기자들에게 “대통령에게 투자 활성화 등 여러가지를 건의하고 설득했지만 잘 먹혀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계는 경기둔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올 하반기를 기업들이 불편해하는 규제를 없애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전경련은 최근 77개 세제 개선과제를 선정해 재경부와 행자부 등에 전달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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