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차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세청장회의 성과 브리핑에서 마크 에버슨 미국 국세청장(가운데), 전군표 국세청장, 제프리 오웬스 오이시디 국장(왼쪽)이 ‘서울선언’을 발표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OECD 국세청장 회의…과세당국간 국제공조 강화 “한 외국계은행 서울지점은 97년 외환위기 당시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해 거액의 외화자산 평가이익 발생이 예상되자 세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외국 관계사와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해 거액의 채권매각 손실을 냈다. 조세피난처의 유령회사한테서 채권을 샀는데, 일방적으로 불리한 거래를 통해 손실액만 2천억원이었다.” “미국 정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 2002년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외국 자회사로부터 벌어들인 전체 이윤 2550억달러 가운데 58%인 1490억달러가 전세계 18곳의 조세피난처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 국세청이 주최한 공격적 조세회피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나왔던 조세회피 사례들이다. 토론회 당시 국세청과 시민단체 등은 “국경없는 자본이 공평과세와 재정기반을 흔들고 있다”며 강력한 대응 방침을 밝혔지만, 세무사와 회계사 등 세무 관련 실무자들은 “법의 허용범위 안에서 세금을 적게 내려는 것인 만큼 공격적 절세행위는 당연히 합법”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조세회피 행위가 점점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각 나라 조세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 해결책 모색에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세금 회피 방법을 알려주고 탈세를 조장하는 로펌이나 회계법인, 세무대리인들에 대한 감시가 국제적으로 강화될 전망이다. 14~15일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제3차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세청장 회의’는 이같은 국제적 공조의 첫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됐다. 회의에 참가한 40개국 국세청장들은 15일 폐막식에 맞춰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서울선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회의 의장인 마크 에버슨 미국 국세청장은 이날 폐막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의에 참가한 국세청장들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국제적 조세회피가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이를 대처하기 위해 과세당국간 협력을 강화하고, 조세회피나 탈법적인 절세를 조장하는 세무대리인과 금융기관 등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서울선언의 주요 내용을 보면 △조세회피 행위에 대한 민사상 책임과 조세범칙 처벌 △국제적 조세회피 전담조직 운영 △탈세조장 회계법인, 로펌, 투자은행에 공동 대처 △대기업 최고경영자 및 감사위원회의 세금전략에 대한 관심 제고 등을 담고 있다. 또 조세회피의 유형과 수단을 파악하기 위해 사례를 분류해 각 나라에 소개하기로 했고, 탈세전략을 조장하는 로펌 등에 대한 분석은 내년 말까지 관련 연구를 끝내고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전군표 국세청장은 “국제적 탈세에 대응하려면 관련 상대국과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번 서울선언 채택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한국과 같은 자본수입국은 물론 자본수출국인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도 이런 취지에 이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서울선언은 회계법인이나 로펌 등 조세회피를 조장하는 기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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