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에 대만 업체들 바짝 추격
감산·투자 축소에도 수익성 비관적
감산·투자 축소에도 수익성 비관적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는 우리나라 엘시디(LCD) 산업이 수익성 악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엘지필립스엘시디는 2분기 연속 4천억원 가까운 대규모 적자를 냈다. 오는 16일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삼성전자의 엘시디 부문도 영업수지를 낙관하기 힘든 형편이다. 4분기에도 개선의 징후가 뚜렷치 않고, 턱밑까지 쫓아온 대만 업체들의 추격은 빨라지고 있다.
국내 엘시디 업체들의 고전은 텔레비전, 모니터, 노트북 피시용 패널의 공급과잉으로 인해 판매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12일 엘지필립스엘시디의 실적 자료를 보면, 3분기 평방미터(㎡)당 엘시디 평균 판매가격은 1430달러로 1년 전 2121달러에 견줘 30% 넘게 떨어졌다. 연초부터 이어진 환율하락 추세도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데 한 몫을 했지만 가격하락 속도가 예상치를 훨씬 웃돌면서 손실 폭이 커졌다. 엘지필립스엘시디의 3분기 영업손실은 382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적자가 100억원 더 늘어났다. 론 위라하디락사 엘지필립스엘시디 사장은 “패널 원가를 12% 가량 낮추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가격 하락 폭을 상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엘지필립스엘시디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소니와의 합작으로 안정적인 수요처를 갖고 있는 데다 모바일용 패널 등으로 제품 구성을 다변화시켜 가격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널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에 삼성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3분기 엘시디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지는 않겠지만 2% 안팎의 낮은 이익률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패널 업체들은 이에 따라 추가 투자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 올 2분기 생산량을 줄이면서 4주 분량의 재고를 2주로 떨어뜨린 엘지필립스엘시디는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의 3분의 1로 줄일 계획이다.
국내 업체들이 주춤하는 사이 세계 3, 4위인 대만의 에이유옵트로닉스(AUO)와 치메이옵토일렉트로닉스(CMO)는 올 초 두 자리수 영업이익률을 내며 수익 면에서 한국 업체들을 크게 앞질렀다. 매출 규모에서도 한때 한국 업체들을 추월하기도 했다.
국내 엘시디 업체들이 고전하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특히 삼성전자와 엘지필립스엘시디가 연초 차세대 신규라인 가동을 앞당기면서 경쟁적으로 증설에 나선 것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 예상과 달리 월드컵 특수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재고가 쌓인 것도 원인이다. 이는 대만업체들이 5.5세대 라인에서 위험회피 전략으로 수익성 위주의 경영에 주력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최정덕 엘지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 업체들이 대만 업체들에 비해 차세대 생산라인에 선행투자를 많이 했음에도 상대적으로 대형 텔레비전용 패널가격이 더 하락하는 바람에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당분간 패널가격 반등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국뿐 아니라 대만 업체들까지 감산과 투자 축소에 나서면서 공급과잉이 진정될 것이란 낙관론도 나오고 있지만 연말까지는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동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계절적 비수기인 내년 상반기를 앞두고 패널 가격은 연말에 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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