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빼돌리기·부실사지원 규제 불가피
해소비용 과장…현실감안 기존분 인정할 듯
경영권위험은 엄살…의결권제한도 유예검토
선진국은 피라미드식 재벌형성 원천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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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위험은 엄살…의결권제한도 유예검토
선진국은 피라미드식 재벌형성 원천봉쇄
공정위-재벌 공방 4대쟁점
출자총액제한제 개편을 둘러싼 재벌시책 논란이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문제로 옮겨붙으며 가열되고 있다. 지난 2003년 재벌 소속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때 공방이 3년 만에 재연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취지로 볼 때 순환출자 금지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반면 재계와 보수언론들은 기업투자를 가로막는 출총제를 없애지는 못할망정 순환출자까지 금지하는 것은 ‘이중족쇄’라고 반발한다. 일부에선 공정위 해체까지 주장한다. 공정위와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 부처 장관들은 9일 오전 만나 정부안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재계와 보수언론이 순환출자 금지에 반대하는 4가지 핵심 이유와 타당성을 살펴본다.
1. 순환출자 금지는 이중족쇄다?
재계와 보수언론들은 출총제가 기업투자를 가로막는다며 폐지를 요구해왔다. 전경련은 “기업에게 출총제보다 더 큰 부담을 주는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방안을 도입하는 것은 출총제 개편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출총제 존폐 문제와 순환출자 규제는 별건으로 본다. 권오승 공정위원장은 8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주최 강연에서 “환상형 순환출자는 공정거래법상 금지돼 있는 상호출자 변형이므로 규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은 자산 2조 이상 재벌 계열사 경우 A사가 B사의 주식을 갖고, B사가 다시 A사의 주식을 갖는 상호출자를 금하고 있다. 상법에서도 상호출자를 엄격히 규제한다. 선진국 경우 이탈리아는 일체의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25%와 10%가 넘는 상호출자를 규제한다. 미국도 모회사-자회사 간 상호출자는 의결권을 제한한다. 이론적으로 A사가 B사에, B사가 C사에, C사가 다시 A사에 출자하는 순환출자도 상호출자의 일종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임영재 박사는 “상호출자와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는 자사주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취지와 똑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그동안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눈감아왔다. 총수 일가가 평균 5%도 안되는 적은 지분만으로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체제에 미칠 파장 때문이었다. 공정위는 재벌의 순환출자가 총수 일가의 회사이익 빼돌리기, 부실 계열사 지원, 독과점 심화, 경제력 집중 등 여러 폐해를 낳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말한다. 2. 순환출자 해소에 수조원이 든다? 재계와 보수언론들은 환상형 순환출자 해소에 수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며, 주로 삼성을 예로 든다. 삼성의 대표적 순환출자 고리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중에서 고리를 끊는데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7.26%(1068만8892주)를 처분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이 주식을 사려면 6조5천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삼성카드가 가지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 25.6%(64만1123주)를 처분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주식평가액(주당 38만7천원)을 기준으로 하면 2500억원 정도다. 이는 5조원이 넘는 이건희 회장 부자의 보유주식 평가액의 5%에도 못미친다. 공정위는 “삼성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데 수조원이 든다고 보도하는 것은 전형적인 부풀리기”라고 지적한다. 순환출자 해소 비용만 생각할 때 가장 부담이 큰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의 대표적 순환출자 고리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이를 끊는 방법은 기아차가 가지고 있는 현대모비스 주식 18.15%(1555만8120주)를 정몽구 회장 일가가 인수하는 것이다. 그 비용은 1조4천억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현대차에 당장 비상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기왕에 이뤄져 있는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의결권 제한이나 세제 유인을 통한 자발적 해소 방안을 검토 중이다. 3.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진다? 삼성과 보수언론은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기존 순환출자 분을 인정하더라도 의결권을 제한하면 외부세력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때 방어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 왜곡이라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삼성카드가 갖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 25.6%가 제3자에게 넘어간다고 해도 에버랜드의 경영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에버랜드의 나머지 지분 중 64.6%를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 계열사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벌 규제로 인해 국내 우량기업의 경영권이 외국자본에 의해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엄포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2004년 정부가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에 대해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려고 했을 때도 삼성은 이를 집중 부각시켰다. 삼성은 당시 이런 주장을 앞세워 재벌 소유 금융 계열사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제11조에 대해 위헌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된지 2년이 지나도록 시장에서 삼성전자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얘기는 단 한번도 나온 적이 없다. 당시에도 시장에서는 삼성과 보수언론의 경영권 위협 주장에 대해 근거가 희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룹 중에는 총수일가나 계열사 지분이 상대적으로 낮아 의결권이 제한되면 경영권 위협을 받는 곳이 있을 수 있다. 공정위는 이를 감안해 의결권 제한을 할 경우 10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4. 선진국엔 없는 제도다? 재벌과 보수언론은 국제적으로 환상형 순환출자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며 ‘과잉규제’라고 주장한다. 전경련은 외국에도 국내 재벌과 같은 환상형 순환출자가 보편적이라며 캐나다의 브롱프만그룹, 독일의 도이치뱅크그룹, 남아프리가의 앵글로-아메리칸그룹을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임영재 박사는 “전경련이 단지 몇가지 사례로 전 세계에 환상형 순환출자가 보편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한다. 전경련의 사례들이 순환출자를 합리화하기 위한 예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도이치뱅크 그룹은 은행이 일반기업을 지배하는 독일의 특수한 상황은 극히 일부에서 환상형 순환출자가 형성된 경우다. 브롱프만 그룹은 환상형 순환출자를 통한 총수일가의 전횡이 문제가 된 사례다. 학자들은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선진국이 거의 없는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환상형 순환출자를 가진 재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미국 영국 일본 등 재벌 폐해를 경험한 선진국들이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해 강력한 재벌시책을 쓴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35년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피라미드식 재벌 형성을 억제하기 위해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80% 미만일 경우 기업간 배당에 중과세하는 제도를 도입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영국은 1968년 상장사 지분을 30% 이상 취득할 때는 전체 지분을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제를 도입해 자회사 지분을 100% 갖지 않고는 기업집단을 형성하기 어렵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공정거래법은 자산 2조 이상 재벌 계열사 경우 A사가 B사의 주식을 갖고, B사가 다시 A사의 주식을 갖는 상호출자를 금하고 있다. 상법에서도 상호출자를 엄격히 규제한다. 선진국 경우 이탈리아는 일체의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25%와 10%가 넘는 상호출자를 규제한다. 미국도 모회사-자회사 간 상호출자는 의결권을 제한한다. 이론적으로 A사가 B사에, B사가 C사에, C사가 다시 A사에 출자하는 순환출자도 상호출자의 일종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임영재 박사는 “상호출자와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는 자사주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취지와 똑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그동안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눈감아왔다. 총수 일가가 평균 5%도 안되는 적은 지분만으로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체제에 미칠 파장 때문이었다. 공정위는 재벌의 순환출자가 총수 일가의 회사이익 빼돌리기, 부실 계열사 지원, 독과점 심화, 경제력 집중 등 여러 폐해를 낳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말한다. 2. 순환출자 해소에 수조원이 든다? 재계와 보수언론들은 환상형 순환출자 해소에 수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며, 주로 삼성을 예로 든다. 삼성의 대표적 순환출자 고리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중에서 고리를 끊는데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7.26%(1068만8892주)를 처분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이 주식을 사려면 6조5천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삼성카드가 가지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 25.6%(64만1123주)를 처분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주식평가액(주당 38만7천원)을 기준으로 하면 2500억원 정도다. 이는 5조원이 넘는 이건희 회장 부자의 보유주식 평가액의 5%에도 못미친다. 공정위는 “삼성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데 수조원이 든다고 보도하는 것은 전형적인 부풀리기”라고 지적한다. 순환출자 해소 비용만 생각할 때 가장 부담이 큰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의 대표적 순환출자 고리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이를 끊는 방법은 기아차가 가지고 있는 현대모비스 주식 18.15%(1555만8120주)를 정몽구 회장 일가가 인수하는 것이다. 그 비용은 1조4천억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현대차에 당장 비상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공정위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기왕에 이뤄져 있는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의결권 제한이나 세제 유인을 통한 자발적 해소 방안을 검토 중이다. 3.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진다? 삼성과 보수언론은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기존 순환출자 분을 인정하더라도 의결권을 제한하면 외부세력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때 방어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 왜곡이라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삼성카드가 갖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 25.6%가 제3자에게 넘어간다고 해도 에버랜드의 경영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에버랜드의 나머지 지분 중 64.6%를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 계열사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벌 규제로 인해 국내 우량기업의 경영권이 외국자본에 의해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엄포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2004년 정부가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에 대해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려고 했을 때도 삼성은 이를 집중 부각시켰다. 삼성은 당시 이런 주장을 앞세워 재벌 소유 금융 계열사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제11조에 대해 위헌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된지 2년이 지나도록 시장에서 삼성전자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얘기는 단 한번도 나온 적이 없다. 당시에도 시장에서는 삼성과 보수언론의 경영권 위협 주장에 대해 근거가 희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룹 중에는 총수일가나 계열사 지분이 상대적으로 낮아 의결권이 제한되면 경영권 위협을 받는 곳이 있을 수 있다. 공정위는 이를 감안해 의결권 제한을 할 경우 10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4. 선진국엔 없는 제도다? 재벌과 보수언론은 국제적으로 환상형 순환출자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며 ‘과잉규제’라고 주장한다. 전경련은 외국에도 국내 재벌과 같은 환상형 순환출자가 보편적이라며 캐나다의 브롱프만그룹, 독일의 도이치뱅크그룹, 남아프리가의 앵글로-아메리칸그룹을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임영재 박사는 “전경련이 단지 몇가지 사례로 전 세계에 환상형 순환출자가 보편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한다. 전경련의 사례들이 순환출자를 합리화하기 위한 예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도이치뱅크 그룹은 은행이 일반기업을 지배하는 독일의 특수한 상황은 극히 일부에서 환상형 순환출자가 형성된 경우다. 브롱프만 그룹은 환상형 순환출자를 통한 총수일가의 전횡이 문제가 된 사례다. 학자들은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선진국이 거의 없는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환상형 순환출자를 가진 재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미국 영국 일본 등 재벌 폐해를 경험한 선진국들이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해 강력한 재벌시책을 쓴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35년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피라미드식 재벌 형성을 억제하기 위해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80% 미만일 경우 기업간 배당에 중과세하는 제도를 도입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영국은 1968년 상장사 지분을 30% 이상 취득할 때는 전체 지분을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제를 도입해 자회사 지분을 100% 갖지 않고는 기업집단을 형성하기 어렵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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