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산자부 반대에 무산 가능성 커…출총제 대상만 축소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와 환상형(고리) 순환출자 규제 등 재벌 정책을 놓고 정부가 재벌들의 입김에 계속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공정거래원회 등 출총제 개편 방안을 마련 중인 관계 부처들은 최근 실무협의에서 현행 출총제 적용 대상을 대폭 축소해 곧바로 시행하지만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강제 규정을 두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실무협의에 참석한 한 정부 관계자는 “출총제 완화 조건으로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를 제안한 공정위에 대해 재경부와 산자부가 기업에 부담을 주는 새로운 규제는 곤란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며 “결국 이번주 안에 관계 부처 장관회의에서 확정할 출총제 개편안은 적용 대상만 축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 없이 출총제만 후퇴시키겠다는 얘기이다.
정부는 현재 ‘자산 6조원 이상 14개 기업집단의 모든 계열사’로 되어 있는 출총제 적용 대상을 ‘자산 10조원 이상 7개 그룹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중핵 기업 24곳’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이미 잠정 확정했다. 공정위는 그동안 재벌들의 출총제 폐지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되 환상형 순환출자는 새롭게 규제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재벌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다른 경제 부처에 계속 밀려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재벌 계열사끼리 출자가 이어지는 환상형 순환출자는 상법이나 공정거래법의 ‘상호출자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애초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해 지분 매각명령이나 과태료 부과 같은 강제규정을 두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관계 부처 협의 과정에서 ‘기존 환상형 순환출자는 유예기간을 두고 해소되도록 하고 신규 출자는 금지’ ‘기존 출자를 해소하면 세금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신규 출자는 의결권만 제한’ 등으로 갈수록 물러지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은 “이번 출총제 개편 과정을 보면 일관성과 원칙보다 뚜렷한 근거도 없는 ‘기업 현실’을 더 중시하는 정부의 태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며,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재벌 정책을 비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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