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에레로 자문관(왼쪽), 빙햄 교수(가운데),매너마 소장(오른쪽)
핀란드·아일랜드 이해집단 갈등 녹여내 성공
한국은 비정부기구가 정책결정과정 참여해야
한국은 비정부기구가 정책결정과정 참여해야
‘국가발전 비전’ 국제회의
국가 미래전략 분야의 석학들은 한 나라의 장기 비전이 성공하려면 전략을 잘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사회 각 분야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세계은행(IBRD)은 4일부터 이틀 동안 공동으로 한국개발연구원에서 ‘21세기 국가 장기 발전 비전과 전략’ 국제회의를 열고 있다. 이 회의에는 세계은행에서 국가 비전 프로젝트의 두뇌 구실을 하고 있는 파블로 게레로 세계은행 부총재 자문관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핀란드, 아일랜드 등에서 국가 비전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사들이 참가해 한국의 ‘비전 2030’ 작업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게레로 자문관은 이날 ‘비전 작업의 의의와 글로벌 논의 동향’이란 주제발표에서 “많은 성공한 국가들은 내적인 변화 과정을 주도한 비전을 갖고 있다”며 “국가 비전은 글로벌 경쟁력 개선을 위한 주요한 수단이자 미래의 공동 목표에 관한 이익집단 간의 합의를 도모하기 위한 주요한 과정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국회-시민사회 간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합의와 대타협만이 비전의 생명력과 안정성을 보장해줄 수 있다”며 “정부는 국회와 시민사회 간의 대화를 유도하고, 국회도 공식기구를 통해 비전의 실행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적 타협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협상 능력이 약한 이해당사자들을 배려해 대등한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독립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기득권 세력 위주로 비전 작업이 진행돼 결국 실패하기 쉽다는 것이다.
핀란드 미래학연구소의 미카 마네르마 소장과 아일랜드 정부 자문기구인 포르파스의 로넌 라이언스 경제연구위원은 자신들의 나라가 국가 비전 추진에서 성공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먼저 핀란드는 의회가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마네르마 소장은 “핀란드 의회는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1992년에 정부에 ‘미래 예측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93년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를 심의·검토하기 위해 전체 의원 200명 중 167명의 발의로 의회 안에 ‘미래위원회’를 설치한 뒤 2002년에는 이를 상임위원회로 격상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 위원회는 국가 발전전략을 토론하는 것은 물론, 행정부와 협의를 통해 사회적 타협을 이뤄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라이언스 연구위원은 노·사·정간 ‘사회적 협약’이 아일랜드의 비전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일랜드는 1960년대 이후 수출 주도형 개방 전략을 추진했으나, 이해집단간 갈등으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그러나 87년 사회적 타협을 계기로 내부 갈등이 완화되면서 발전의 전기를 마련해 90년대 이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일랜드는 최근 몇년간 다시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경제발전에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해, 최근 제2차 비전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라고 소개했다.
리사 빙엄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는 한국 정부의 ‘비전 2030’과 관련해 “한국은 세대간 격차와 경제적 이해관계의 상충이 커지면서 사회적인 갈등 조정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국가 지배구조 내부의 갈등조정 능력이 비전 추진의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의 위계구조 중심의 전통적인 통치구조는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 극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비정부기구(NGO)들이 협력관계를 구축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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