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 소송제 분쟁해결 절차
위헌 소지 큰 ‘투자자-국가소송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도입 여부를 둘러싼 관계부처 간의 불협화음을 보면, 이번 협상이 얼마나 졸속으로 추진되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헌법과 사법주권 훼손, 공공정책과 규제의 무력화 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중대 사안임에도, 정부는 공식 협상개시 선언 6개월 뒤, 또 본협상을 시작하고 2개월 동안 두 차례 협상을 하고 나서야 민관 공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위헌성 모르다 법조계 등서 문제제기
TF 부랴부랴 구성, 뒤늦게 수정안 내
외교부 소극적…FTA 협상 쟁점 부각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태도=협상을 주도한 정부 내 외교통상라인 쪽은 애초 이 제도의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듯하다. 본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인 지난해 4월, 비공개를 전제로 교환한 협정문 초안에 미국 쪽 요구를 그대로 담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관련 조항을 넘겨버렸다. 그러나 협정에 반대하는 법조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자, 그해 6월 열린 1차 협상에서 슬며시 미국 쪽에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협정문 배제안’을 던져본다. 물론 미국은 일축했다. 이 제도는 미국이 만든 통상질서이자 대외통상조약을 맺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2월 우리 쪽에 보낸 협상개시 통지문에서 “한국에 투자한 미국인을 미국의 법 원칙과 실무에 부합하는 틀에서 보호를 하는 것이 협상의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투자자 대 국가 분쟁이 문제가 많다고 시민단체에서 계속 주장하므로 브이아이피(대통령을 지칭)께서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문가들과 논의를 해보라고 지시”했다며 8월 초에야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첫 회의를 한다. 그때까지는 뭐가 문제인지 자세하게 검토해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제통상분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2003년에 결렬된 한-미 투자협정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 스크린쿼터와 함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였고 우리가 미국과 협상을 검토할 시점에 미국과 호주 사이에 체결된 협정에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배제돼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며, 외교통상 라인에서 위헌 소지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것을 개탄했다. 협상 성패의 결정적 요소로 부상=지금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는 몇가지 딜브레이커(전체 협상을 결렬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드러난 것은 우리 쪽이 최대 관심을 보이는 무역구제, 미국 쪽이 압박하는 의약품, 뼛조각 쇠고기 문제 등이다. 앞으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또다른 걸림돌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협상 타결 시한에 급급해서 정부내 관계 부처와 에프티에이에 우호적인 민간 전문가들조차도 문제를 제기한 이 사안을 그냥 넘어가서는 엄청난 국내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협상단도 수정안을 계속 요구하고 있기는 하다. 수용에 한해 국제중재가 아닌 국내 사법절차를 통하도록 하고, 논란의 소지가 많은 간접수용에서 환경·보건·안전 관련 규제와 함께 부동산·조세·독점 규제도 포함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게 협상단의 방침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에서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태스크포스 회의에서도 협상단의 외교부 관계자는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준을 넘는 제의는 협상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면서 소극적인 태도다. 태스크포스의 최종보고서에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의 배제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돼 있다. 지금 정부 협상단은 헌법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냐, 아니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성공적으로 타결할 것이냐를 놓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TF 부랴부랴 구성, 뒤늦게 수정안 내
외교부 소극적…FTA 협상 쟁점 부각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태도=협상을 주도한 정부 내 외교통상라인 쪽은 애초 이 제도의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듯하다. 본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인 지난해 4월, 비공개를 전제로 교환한 협정문 초안에 미국 쪽 요구를 그대로 담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관련 조항을 넘겨버렸다. 그러나 협정에 반대하는 법조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자, 그해 6월 열린 1차 협상에서 슬며시 미국 쪽에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협정문 배제안’을 던져본다. 물론 미국은 일축했다. 이 제도는 미국이 만든 통상질서이자 대외통상조약을 맺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2월 우리 쪽에 보낸 협상개시 통지문에서 “한국에 투자한 미국인을 미국의 법 원칙과 실무에 부합하는 틀에서 보호를 하는 것이 협상의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투자자 대 국가 분쟁이 문제가 많다고 시민단체에서 계속 주장하므로 브이아이피(대통령을 지칭)께서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문가들과 논의를 해보라고 지시”했다며 8월 초에야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첫 회의를 한다. 그때까지는 뭐가 문제인지 자세하게 검토해 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제통상분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2003년에 결렬된 한-미 투자협정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 스크린쿼터와 함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였고 우리가 미국과 협상을 검토할 시점에 미국과 호주 사이에 체결된 협정에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배제돼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며, 외교통상 라인에서 위헌 소지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것을 개탄했다. 협상 성패의 결정적 요소로 부상=지금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는 몇가지 딜브레이커(전체 협상을 결렬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드러난 것은 우리 쪽이 최대 관심을 보이는 무역구제, 미국 쪽이 압박하는 의약품, 뼛조각 쇠고기 문제 등이다. 앞으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또다른 걸림돌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협상 타결 시한에 급급해서 정부내 관계 부처와 에프티에이에 우호적인 민간 전문가들조차도 문제를 제기한 이 사안을 그냥 넘어가서는 엄청난 국내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협상단도 수정안을 계속 요구하고 있기는 하다. 수용에 한해 국제중재가 아닌 국내 사법절차를 통하도록 하고, 논란의 소지가 많은 간접수용에서 환경·보건·안전 관련 규제와 함께 부동산·조세·독점 규제도 포함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게 협상단의 방침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에서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태스크포스 회의에서도 협상단의 외교부 관계자는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준을 넘는 제의는 협상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면서 소극적인 태도다. 태스크포스의 최종보고서에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의 배제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돼 있다. 지금 정부 협상단은 헌법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냐, 아니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성공적으로 타결할 것이냐를 놓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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