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있는 제품 위해 중국보다 개성공단 선택” 개성공단이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멀게만 느껴지던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단 몇 시간만에 남쪽의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일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 거리로 따지면 광화문에서 80㎞ 정도에 불과하니 그동안 마음 속의 거리가 얼마나 멀었는지를 실감케 한다. 개성공단은 이제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나아가 남북 상생의 터전이자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건비 남쪽 20분의 1 수준인데다 거리 가까워
무엇보다 말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생산도 가능
남북 특수성 밀 감안해야…대기업 관심 갖길 개성공단의 작은 성공에는 남북 당국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단 진출을 결정하고 투자를 감행한 기업인들의 결단이 큰 몫을 했다. 현재 개성공단 안 2만8천평 규모의 시범단지에는 로만손과 리빙아트, 에스제이테크 등 15개 기업이 입주했거나 입주 작업을 하고 있다. 김기문(50) 로만손 대표이사 사장은 이들 입주 기업의 대표를 맡아 개성공단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입주 기업들이 개성공단 투자를 결정한 것은 남북 화해에 기여한다는 긍지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개성공단 투자의 경제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김 대표로부터 개성공단의 현황과 전망을 들어봤다. -현재 개성공단과 관련해 어떤 일을 맡고 계십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개성공업지구 기업책임자회의 회장입니다. 현 개성공업지구법에 명시된 직함이에요. 하지만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라는 표현이 쉽고 편합니다. -개성공단 투자를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남한의 시계 생산 인프라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급부상 때문이죠. 인건비를 포함한 가격 면에서 우리가 중국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어요. 반대로 품질 면에서는 중국이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고요. 이 때문에 많은 공장이 중국과 동남아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성공단에 주목했어요. 불확실성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려면 우리나라 제품은 우리나라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봤고,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이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기업인으로 볼 때 개성공단 입주가 어떤 이점이 있습니까? =우선 가격 요인입니다. 인건비가 남쪽 공장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해요. 중국의 동북 3성과는 비슷하지만, 심천공단보다는 절반 정도나 싸요. 또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중국이나 동남아에 비해 납기일 면에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한다는 점은 향후 고부가가치의 감성 제품 생산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매력적입니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이유로 입주했습니다. 북한 핵 문제 등 정치 문제를 떼놓고 본다면, 전력과 통신 등 여건도 좋아지고 있어 개성공단은 중소기업과 노동집약 산업에 제2의 도약을 위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감성제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손끝의 노하우가 많이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제품입니다. 핸드메이드 제품이 비싼 이유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기 때문이죠. 이런 제품은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 뜻이 통해야 제품에 구현하고자 하는 형상이라든가 디자인이 잘 나올 수 있어요. 언어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북한 인력을 통해서 핸드메이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죠. 개성공단에서 모든 품목이 이런 정도까지 발전할 수는 없겠지만, 시계라든가 완구라든가 스포츠용품 등 상당수 품목에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은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직접적으로는 남한 기업이 지불하는 땅값과 노동자 임금 등을 수입으로 얻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남한 기업이 공장을 세워 운영하면 북한 사람을 기술자나 관리자로 채용하게 되는데, 시장경제를 훈련하는 데 있어서 이는 엄청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성공단이 성공을 거둬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만들어지면 북한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남한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투자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미 독일과 일본 등이 북한에 대한 투자 여부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진출 과정에서 미국 쪽의 전략물자 반출 통제로 애를 먹고 있다고 하던데요? =지금도 15개 입주 기업 중에서 2곳이 아직도 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전략물자 반출 통제는 말 그대로 개성공단으로 나가는 물품이 전쟁물자 생산에 쓰여서는 안된다는 우려 때문에 진행되는 절차입니다. 남쪽으로서도 이런 심사는 처음 받아보는 것이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노하우가 쌓이고 있어요. 정밀기계로 대포를 만들 수도 있고 또 시계 케이스를 만들 수도 있지만, 반드시 시계 케이스 만드는 데 쓰인다는 것을 증명하면 전략물자가 아닌 셈이죠. 이런 점을 미국쪽에 제대로 설명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또 미국이 심사 주체이기는 하지만 국제협약(바세나르협약)에 따라 이뤄지는 것인 만큼, 협약을 준수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전략물자 심사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미국과 신뢰를 쌓게 되면, 앞으로 우리 정부가 심사권을 위임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으로서는 하나의 개방 실험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조심스럽고 가끔 적대적일 때도 있었을텐데, 그런 점에서 그동안 북한의 태도에 혹시 변화의 조짐이 있습니까? =남이나 북이나 사람이 한두번 보면 정이 들고 웃음이 나오고 반가운 게 인지상정입니다. 다만 그들이 공산주의 체제에 살다보니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소간의 마찰도 예상됩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을 재촉한다거나 납기에 몰려 과도하게 일을 시킬 때도 있을텐데, 그런 상황을 남북이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 지가 관건입니다. 어느 정도 마찰은 우리가 안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개성공단에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에 조언을 해주신다면? =주변에 있는 기업인들의 문의도 많고 만날 때마다 귀찮을 정도로 묻곤 해요. 실제로 개성공단의 장점은 많습니다. 그러나 남북 관계의 특수성도 충분히 감안해야 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대해 연구하고 개성공단의 변화 상황도 꾸준히 점검해야 합니다. 직접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정부에서도 그런 자리를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또 남북 경협에 기여한다는 사명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기업들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전경련이 “아직은 관심 밖이다”라고 했는데, 대기업들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기업들이 공장을 들여와 지을 때 북한도 남한의 경협 의지에 신뢰를 보낼 것이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입이다. 글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기문 사진은 누구인가
기술·디자인으로 시계회사 도전…지난해 매출 450억
김기문 로만손 사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충북 괴산 출신이다. 특별한 학벌이나 인맥의 도움없이 지난 1988년 시계회사 로만손을 세운 김 사장은 독창적인 시계와 보석류 제품으로 지난해 450억원어치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 가운데 수출 비중이 절반에 이를 정도로 세계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맨손으로 출발한 김 사장이 시계시장에서 우뚝서기 위해 전력을 투구한 분야는 디자인과 브랜드였다. 이런 노력은 각종 디자인 경연대회의 수상 실적으로 나타났고, 지난 98년부터 지금까지 김 사장이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아오게 한 이유가 됐다.
김 사장은 또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 기업 15개 가운데 로만손이 공장 규모와 투자 규모 면에서 가장 큰 기업이어서, 당연직처럼 입주 기업 대표가 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는 김 사장은 개성공단에서 다시 한번 성공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로만손은 협력업체 5곳과 함께 오는 5월 개성공단에 협동화단지를 완공해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 사장은 “입주가 완료되면 향후 3년에 걸쳐 남쪽 공장 생산량의 100%까지 공장 시설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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