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승계 물위로
보수풍토·소외감 깨고 새 ‘먹거리’ 찾아야
전략기획실 ‘굴절’·후계자 ‘미화’ 극복도 과제
이 전무 상속증여 논란 “책임있는 태도 필요”
전략기획실 ‘굴절’·후계자 ‘미화’ 극복도 과제
이 전무 상속증여 논란 “책임있는 태도 필요”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3년 ‘신경영’을 주창하면서 “관리가 삼성의 뒷다리를 잡고 있다”고 질타했다. 당시는 뛰어난 관리능력이 삼성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라 이 회장의 말은 큰 충격이었다. 이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삼성의 퇴직 임원은 “이 회장은 87년 회장 취임 이후에도 부친의 그늘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했다”며 “이 회장이 ‘관리의 삼성’을 공격한 것은 사실은 이병철 체제를 부정하면서 자기만의 독자적인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이 ‘관리의 삼성’에서 ‘기술중심의 신경영 삼성’으로의 변화와 개혁을 주창한 것은 당시의 경영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삼성 출신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그 전까지 삼성의 사업은 원료 100을 집어넣으면 99를 산출하는 식의 뻔한 방식이어서 주판알만 잘 튀기면 됐다”며 “하지만 80년대 말부터는 디지털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등 기술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는데, 이 회장이 시대흐름을 잘 읽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역시 성공적인 경영승계를 이루려면 새로운 비전 제시를 통해 이건희 회장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그 비전은 현재 삼성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의 창출과도 맞물려 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출신의 한 고위임원은 “삼성은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수비경영을 하면서 죽지 않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에 그치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하지 않았다”며 “100%도 안되는 부채비율이 그 근거”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임원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는 앞으로 운이 좋으면 10년은 더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과 중국이 추격하고 있어 장담할 수 없고, 휴대폰은 벌써 밀리고 있는데 특히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90년대 초반 신수종산업으로 육성했던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이 지금 효자노릇을 하고 있듯이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의 사령탑 역할을 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한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체제가 오히려 새 성장동력 창출에 애로요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신규사업을 하고 싶어도 전략기획실 검토과정에서 굴절되는 경우가 잦다”며 “계열사 최고경영자의 상당수가 옛 구조본 출신인데, 이들은 안정을 중시하고 새로운 사업에는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강조하는 ‘천재경영론’과 철저한 ‘성과주의’의 이면에서 대다수 삼성 구성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이질감도 큰 숙제다. “삼성에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가 있고, ‘핵심인력’과 ‘뚝심인력’이 있다”는 농반진반의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이재용 전무의 리더십은 삼성의 ‘후계자 미화작업’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의 힘과 능력에 의해 구축돼야 의미가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반대로 이 회장에 대한 삼성 전략기획실의 지나친 미화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 회장을 ‘삼성의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내세우면서, 결과적으로 이병철 회장의 공적까지 스스로 퇴색시킨다는 점이다. 이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삼성의 한 퇴직 고위임원은 “반도체사업은 이병철 회장의 직접 지시로 1981년에 시작해서, 83년 10월 수원에 공장을 세웠고, 80년대 중반 사업이 어려워지자 회사 임원들이 ‘반도체가 삼성을 말아먹을 것’이라며 포기를 주장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며 “이병철 회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 전략기획실이 삼성의 자동차사업 실패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의 책임이 없는 것처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성 자동차사업에 참여했던 한 전직 임원은 “자동차사업은 뭐라 해도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전무의 최대 장애물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으로 상징되는 편법·불법 상속증여 논란이다. 에버랜드 사건이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된다면 경영권 승계는 법적·도덕적 정당성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강압적 무노조경영, 불법 정치자금 제공·로비 같은 잘못된 관행은 삼성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삼성은 지난해 2월7일 “에버랜드 등의 증여 문제와 (안기부) X-파일 같은 문제들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깊이 반성한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이후 8천억원 사회기금 헌납, 사회공헌 확대,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구성, 구조본 축소 등의 조처를 취했다. 하지만 ‘2·7 대국민사과’ 1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 삼성이 거듭나기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재용씨가 경영권 승계를 용인받으려면 에버랜드 사건 등에 대해 좀더 책임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삼성의 리더십 변천과 이재용 전무의 과제
삼성의 사령탑 역할을 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한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체제가 오히려 새 성장동력 창출에 애로요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신규사업을 하고 싶어도 전략기획실 검토과정에서 굴절되는 경우가 잦다”며 “계열사 최고경영자의 상당수가 옛 구조본 출신인데, 이들은 안정을 중시하고 새로운 사업에는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강조하는 ‘천재경영론’과 철저한 ‘성과주의’의 이면에서 대다수 삼성 구성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이질감도 큰 숙제다. “삼성에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가 있고, ‘핵심인력’과 ‘뚝심인력’이 있다”는 농반진반의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이재용 전무의 리더십은 삼성의 ‘후계자 미화작업’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의 힘과 능력에 의해 구축돼야 의미가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반대로 이 회장에 대한 삼성 전략기획실의 지나친 미화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 회장을 ‘삼성의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내세우면서, 결과적으로 이병철 회장의 공적까지 스스로 퇴색시킨다는 점이다. 이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삼성의 한 퇴직 고위임원은 “반도체사업은 이병철 회장의 직접 지시로 1981년에 시작해서, 83년 10월 수원에 공장을 세웠고, 80년대 중반 사업이 어려워지자 회사 임원들이 ‘반도체가 삼성을 말아먹을 것’이라며 포기를 주장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며 “이병철 회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 전략기획실이 삼성의 자동차사업 실패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의 책임이 없는 것처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성 자동차사업에 참여했던 한 전직 임원은 “자동차사업은 뭐라 해도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전무의 최대 장애물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으로 상징되는 편법·불법 상속증여 논란이다. 에버랜드 사건이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된다면 경영권 승계는 법적·도덕적 정당성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강압적 무노조경영, 불법 정치자금 제공·로비 같은 잘못된 관행은 삼성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삼성은 지난해 2월7일 “에버랜드 등의 증여 문제와 (안기부) X-파일 같은 문제들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깊이 반성한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이후 8천억원 사회기금 헌납, 사회공헌 확대,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구성, 구조본 축소 등의 조처를 취했다. 하지만 ‘2·7 대국민사과’ 1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 삼성이 거듭나기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재용씨가 경영권 승계를 용인받으려면 에버랜드 사건 등에 대해 좀더 책임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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