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호 회장/조석래 회장/박삼구 회장
회장 구인난…시대흐름 못읽고 내부 반목
“싱크탱크 변신” “경총과 통폐합” 목소리
“싱크탱크 변신” “경총과 통폐합” 목소리
재벌들의 입 노릇을 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진퇴양난의 기로에 섰다. 강신호 회장의 연임 포기 선언으로 이번주부터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재계 안에서조차 ‘전경련 무용론’이 수시로 불거져 나온다.
전경련의 위기는 적절한 회장 후보감을 못찾아서가 아니라, 과거 정경유착의 굴레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구태를 떨쳐버리는 못하는 등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란 지적이 많다. 회원사간 반목과 분열도 화를 불렀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삼성과 비삼성으로 갈리는 재계 내부의 불화, 재계 리더로서 도덕적 자질 상실 등으로 전경련의 역사적 사명은 끝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라면 노사정의 한 축으로 생산적 대타협의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특정재벌의 특정이익을 대변하면서 사회발전의 걸림돌로 비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지금과 같은 재벌총수들의 친목단체 성격에서 벗어나 미국 헤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재계 내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참에 경총이나 대한상의와 통폐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처럼 경제단체끼리의 유사 기구와 기능을 합쳐야 한다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4대그룹의 한 임원은 “그동안 전경련이 재계를 위해 제대로 한 게 뭐 있느냐. 이럴바에야 발전적 해체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소수의 목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전경련이 변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상당수 기업인들도 인정하는 바다. 또다른 그룹 임원은 “재계의 구심점으로 전경련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많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같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뭘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전경련이 맞닦뜨린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팔순이 된 강 회장은 지난 2003년 가을 비자금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손길승 전 에스케이 회장이 분식회계 문제로 중도 하차하자 최연장자로 떠밀리듯 전경련 수장을 맡았다. 당시 강 회장이 한때 직무대행직 수락을 거절하는 바람에 지도부 공백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2005년 초에도 전경련은 새 회장을 구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어야 했다. 2년이 지난 올해 모습도 그 때와 판박이다. 재계순위로 이른바 ‘빅3’(삼성, 현대·기아차, 엘지) 그룹의 ‘실세’ 회장들이 자기들이 만든 조직을 외면해 버리면서 ‘구인’ 소동을 벌이는 역설적인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는 꼴이다. 재벌 총수들 스스로 과거 각종 불·탈법, 비리에 연루되면서 국민적 신뢰를 저버린 탓도 있다.
오는 27일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전경련 총회를 앞두고 재계는 다시 복잡한 셈법에 빠져들고 있다. 후보 물색과 추대 방식 뿐 아니라 개혁 방향을 놓고도 적잖은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안 부재를 빌미로 강 회장 재추대설을 흘리는가 하면, 다음 연장자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을 물망에 올려 놓고 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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