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강수 요구에 자동차, 섬유마저 밀리는 게임
지방조달시장 제외 얻은 건 ‘쭉정이’
지방조달시장 제외 얻은 건 ‘쭉정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로 갈수록 미국은 더 강한 요구를 내놓는데 한국 쪽은 낮은 자세로 타결에만 연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8차 협상에서 미국 협상단은 절충안을 찾기보다 갑작스레 요구 수준을 이전보다 높여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협상단의 잇따른 양보에도 농산물·자동차 등 핵심 쟁점분야에서 양쪽 이견이 더 넓어지는 추세다.
한국 협상단은 지난해 9월 3차 협상 때 농산물 1531품목(세관의 품목분류 기준) 중 개방예외로 284가지를 제시했다. 이마저도 역대 예외 품목수가 가장 적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413가지)보다 훨씬 적다. 거꾸로 보면, 초반부터 역대 최대 폭 농산물 개방안을 내놨던 셈이다. 그런데 한 달 만인 지난해 10월 4차 협상에서 이를 235가지로 줄였다. 미국은 ‘예외 없는 개방원칙’을 강조하며 계속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이번 8차 협상에서는 우리 정부안에서 ‘마지노선’으로 100여 품목을 최종안으로 던졌다. 이를 세관 품목분류 기준이 아니라 국내에서 통용되는 농산품 구분방식으로 계산하면 10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이 협정 체결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따로 고위급 회담을 열어 ‘마지노선 10가지’마저도 다시 3~5가지 정도로 추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더구나 미국 쪽은 몇몇 개방대상 품목도 이번 8차 협상에서 요구 수준을 되레 높였다. 바로 전 7차 협상 때까지는 10년 안 관세 철폐를 요구하던 일부 품목에 대해 막판이 다된 이번 협상 들어 갑자기 “5년 안에 철폐하라”고 압박했다.
자동차와 섬유도 갈수록 밀리는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이번에 미국 요구대로 자동차의 배기량 기준 세제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미국에는 자동차 수입관세의 즉시 철폐를 다시 요구했다. 미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자동차의 환경·안전 관련 기술표준 등 미국이 주장하는 다른 ‘비관세 장벽’ 완화도 이전보다 요구 수준을 더 높였다. 산업자원부의 김준동 자유무역협정팀장은 미국의 이런 자세를 ‘초강수’라고 표현했다.
섬유 분야에서는 한국이 진작 1598품목의 얀포워드(원사) 기준 완화 요구를 접었다. 지난 2월 7차 협상 때부터 85품목에만 기준 완화를 요구했다. 다시 이번 협상에서는 미국 협상단이 자국 섬유업체들이 중시하는 품목 리스트를 보면서, 우리 쪽의 완화요구 품목을 대부분 걸러냈다. 반면에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섬유의 긴급수입 제한조처(세이프가드) 도입을 한국으로부터 얻어냈다.
정부조달 시장 개방도 우리 쪽 이득이 크게 기대됐으나 큰 성과가 없었다. 10일 타결됐지만 미국의 완강한 버티기로 주정부 조달시장은 개방 대상에서 빠졌다. 주정부는 연방정부보다 조달시장 규모가 50% 더 크다. 미국의 주정부 조달시장 규모는 한국의 지방정부와 공기업을 합한 규모보다 40배 이상이다. 우리 협상단은 “중앙정부 발주시장 규모만 해도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1 대 18’이나 된다”며 한국이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정부가 취급하는 영역은 주로 군수조달이며, 안보와 기술수준 차이 등으로 국내 업체들의 진출이 사실상 어렵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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