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몫’ 항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8차 협상 마지막날인 12일 오후 협상장이 마련된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자신을 신학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박아무개(36)씨가 협상대표단의 통행을 막아선 채 “에프티에이 릴랙스(relax)”라고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FTA협상 ‘양보만 하는’ 정부
정부조달·통관 등 자투리 쟁점은 합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8차 협상에 임한 미국의 태도는 한마디로 ‘보호 본색’이다. 겉으론 자유무역을 외치면서도 속으론 자국에 유리한 것만 개방하고 불리한 것은 끝까지 닫는 자세에 충실했다.
미국의 보호 본색=미국은 이번에도 쇠고기와 농산물에 대해 예외 없는 개방을 단호하게 주장했다. 농산물 분과에서 한국은 관세철폐 예외의 마지노선으로 역대 협정 가운데 최소폭인 10개 품목을 제시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예외는 없다”고 버텼다. 그런데도 한국이 학교급식 재료를 한국산 농산물로만 쓰는 것은 인정했다. 미국 또한 학교급식 재료는 자국산만을 쓰기 때문에 한국을 압박할 명분이 없었다.
미국은 섬유의 원산지 기준 완화 요구를 외면하면서 “한국이 값싼 중국산 원사를 이용해 수출하면 협정 체결국도 아닌 중국이 덩달아 혜택을 입는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속내는 자국 업체의 이해관계가 가장 큰 잣대였다. 섬유 고위급협상 대표인 김영학 산업자원부 기간제조산업본부장은 “우리가 일부 품목에 대해 원산지 기준 완화를 요구했는데 미국은 여기서 자국 업체가 취급하는 품목은 다 걸러냈다”고 말했다.
미국은 자동차의 배기량 기준 세제 등을 ‘차별적인 비관세 장벽’이라고 주장하지만 역시 설득력이 없다. 한국은 외국산이든 한국산이든 배기량이라는 같은 잣대로 세금을 매긴다. 더욱이 유럽·일본 등 많은 선진국들도 환경 보호, 도로 사정, 에너지 절약 등을 위해 배기량 기준 세제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자원부의 한 국장은 “자국 제도와 다르다는 점만으로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자국 업계 보호에 집착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 장악 효과=미국 의회를 민주당이 장악하면서 미국 협상단이 주력하는 부문에서도 변화가 엿보인다. 산자부의 한 국장은 “미국 의회가 최근 ‘무역촉진권한을 연장받고 싶으면 자동차에서 한국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고 행정부를 압박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을 위주로 한 연방의원 15명은 지난 2일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 자동차 시장의 개방을 강하게 촉구했다. 민주당이 관심이 많은 노동 분야도 미국 협상단은 신경쓰고 있다. 미국 협상단은 8차 협상 열흘 전쯤 갑자기 노동분과 협상을 미루자고 제안해 왔다.
반면 미국의 의약품 개방 주장은 최근 한풀 꺾였다고 보건복지부의 한 팀장은 전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민주당은 주로 공화당을 대상으로 로비를 해온 제약업계와 서먹한데다, 많은 약값과 보험료가 드는 자국 의료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홍영기 외교통상부 북미통상과 서기관은 “의약품 요구가 약해지고 자동차 요구가 강해져 우리 협상단으로서는 희비가 엇갈린다”고 평가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