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고, 기간 연장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으며, 그 범위안에서 높은 수준, 낮은 수준, 중간 수준 모두 철저하게 따져 국가적 실익, 국민 실익 중심으로 가면 된다"
협상 개시 선언후 1년여에 걸쳐 8차례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식협상이 종료된 다음날인 13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한미 FTA에 대해 밝힌 협상원칙이다.
이는 일단 고위급 협상을 통해 농업과 자동차, 섬유 등을 비롯한 핵심 쟁점들의 '빅딜'을 앞두고 의회의 압력을 받아 공세적으로 나오는 미국에 대한 '경고'성 압박인 동시에 우리 협상단에는 국익을 철저하게 지키라는 당부로 해석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신년 연설 등을 통해 "개방은 대세이며 대세는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읽힌다는 지적도 있어 찬성론과 반대론 양측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다.
◇ "이익 안맞으면 안할 수도 있다" = 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밝힌 첫 번째 원칙은 경제적 이익만 고려해야 하며 한미 FTA가 우리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면 체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미 FTA는 논의가 시작된 이래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모두 한미 FTA에 '정치적 문제'가 고려돼 있다는 점을 빠지지 않고 거론해왔다. 찬성론자들은 미국과 강력한 경제적 연결고리를 갖게 됨으로써 한미 동맹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한미 FTA의 옹호 근거로 제시해왔고, 반대론자들은 미국과의 FTA로 이보다 우선해야 할 동북아 내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비판을 개진해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날 '한미 FTA 안보 강화론'을 적시하면서 "경제외적 문제는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언급의 정확한 맥락을 현재로서는 알기 힘들지만 이전의 기조와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안보 강화론'을 고려하지 말 것을 주문한 노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한)반대는 예측하고 시작한 것이고 지금의 반대도 예측한 수준을 크게 안넘기에 그런 것을 너무 정치적으로 고려하지 말 것"도 함께 당부했다. ◇ '낮은 수준' FTA도 할 수 있다 = 그간 정부 협상단은 우리가 추구하는 한미 FTA에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해왔고 전날 8차 협상을 마감하는 기자회견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도 "균형잡히고 높은 수준의 FTA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높은 수준의 협상이 아니더라도 중간이나 낮은 수준의 협상이라도 합의되면 된다"며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내비쳤다. FTA의 수준이 높거나 낮다는 것을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언급한 FTA의 수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뜻하지는 지를 판단하기 힘들지만 실질적 협상시한을 3주도 못남긴 협상 진행상황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대 쟁점인 농업분야에서는 '쇠고기 문제'를 비롯해 미합의 품목만 280개가 남아있고 양측은 '협상의 원칙'조차 마련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과 업계의 압박으로 미측은 자동차의 공식 양허안 제시조차 없었고, 섬유는 마지막 실무협상인 8차 협상에서 내놓은 양허안이 우리측으로부터 다시 거절된 상태이며 무역구제와 개성공단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언급대로라면 해결이 쉽지않은 이런 쟁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개방할 수 있는 부분만을 여는 FTA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 상황을 볼 때 대통령의 이런 언급이 실제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 FTA에 반대론을 펴온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은 "통상 투자자-국가간 소송(ISD)과 '랫쳇조항'(협정 내용보다 정책을 후퇴시키는 것을 방지하는 역진방지 조항)이 도입돼있다면 이는 높은 수준의 FTA로 볼 수 있다"며 "협상이 막판에 온 상황에서 대통령의 언급이 어떤 의미를 가질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 개방론자인 한덕수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후임 총리로 지명한 것 자체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정 전 국민경제비서관의 분석이다. ◇ "TPA 시한 넘길 수도" = 대통령의 이날 발언 가운데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협상 시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신속협상권(TPA) 시한 안에 하면 아주 좋고, 그 절차의 기간내에 못하면 좀 불편한 절차를 밟더라도 그 이후까지 지속해서 갈 수 있다"고 밝혔다. TPA의 만료기한은 7월초지만 대통령이 의회에 한미 FTA를 체결할 방침을 통보해야 하는 실질적 시한인 3월30일을 넘으면 실질적으로 협상의 주도권은 미국 행정부에서 미 의회로 넘어간다. 이익집단의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는 미 의회가 통상을 주도할 경우 실제 협상을 이끌고 나가기란 어렵다는 게 정부 협상단의 일관된 분석이다. 의원들의 이해에 따라 협상이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다가 형해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대통령이 TPA 시한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협상측면에서 무차별 압박공세를 펴고 있는 미측에 우리도 '옵션'을 갖고 있음을 내비침과 동시에 우리 협상단에 미국의 '강공'에 말려들지 말 것을 주문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인사는 "대통령의 언급이 이전과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FTA의 수위를 낮추거나 협상시한을 넘기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데 방점이 있다고 읽혀지지 않는다"며 "한 마디로 실리를 챙기는 데 중점을 두라는 것이며 '철저히 장사꾼의 원칙으로 협상에 임하라'는 언급이 이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김종수 기자 jsking@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미 FTA는 논의가 시작된 이래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모두 한미 FTA에 '정치적 문제'가 고려돼 있다는 점을 빠지지 않고 거론해왔다. 찬성론자들은 미국과 강력한 경제적 연결고리를 갖게 됨으로써 한미 동맹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한미 FTA의 옹호 근거로 제시해왔고, 반대론자들은 미국과의 FTA로 이보다 우선해야 할 동북아 내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비판을 개진해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날 '한미 FTA 안보 강화론'을 적시하면서 "경제외적 문제는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언급의 정확한 맥락을 현재로서는 알기 힘들지만 이전의 기조와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안보 강화론'을 고려하지 말 것을 주문한 노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한)반대는 예측하고 시작한 것이고 지금의 반대도 예측한 수준을 크게 안넘기에 그런 것을 너무 정치적으로 고려하지 말 것"도 함께 당부했다. ◇ '낮은 수준' FTA도 할 수 있다 = 그간 정부 협상단은 우리가 추구하는 한미 FTA에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해왔고 전날 8차 협상을 마감하는 기자회견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도 "균형잡히고 높은 수준의 FTA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높은 수준의 협상이 아니더라도 중간이나 낮은 수준의 협상이라도 합의되면 된다"며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내비쳤다. FTA의 수준이 높거나 낮다는 것을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언급한 FTA의 수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뜻하지는 지를 판단하기 힘들지만 실질적 협상시한을 3주도 못남긴 협상 진행상황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대 쟁점인 농업분야에서는 '쇠고기 문제'를 비롯해 미합의 품목만 280개가 남아있고 양측은 '협상의 원칙'조차 마련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과 업계의 압박으로 미측은 자동차의 공식 양허안 제시조차 없었고, 섬유는 마지막 실무협상인 8차 협상에서 내놓은 양허안이 우리측으로부터 다시 거절된 상태이며 무역구제와 개성공단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언급대로라면 해결이 쉽지않은 이런 쟁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개방할 수 있는 부분만을 여는 FTA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 상황을 볼 때 대통령의 이런 언급이 실제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 FTA에 반대론을 펴온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은 "통상 투자자-국가간 소송(ISD)과 '랫쳇조항'(협정 내용보다 정책을 후퇴시키는 것을 방지하는 역진방지 조항)이 도입돼있다면 이는 높은 수준의 FTA로 볼 수 있다"며 "협상이 막판에 온 상황에서 대통령의 언급이 어떤 의미를 가질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 개방론자인 한덕수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후임 총리로 지명한 것 자체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정 전 국민경제비서관의 분석이다. ◇ "TPA 시한 넘길 수도" = 대통령의 이날 발언 가운데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협상 시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신속협상권(TPA) 시한 안에 하면 아주 좋고, 그 절차의 기간내에 못하면 좀 불편한 절차를 밟더라도 그 이후까지 지속해서 갈 수 있다"고 밝혔다. TPA의 만료기한은 7월초지만 대통령이 의회에 한미 FTA를 체결할 방침을 통보해야 하는 실질적 시한인 3월30일을 넘으면 실질적으로 협상의 주도권은 미국 행정부에서 미 의회로 넘어간다. 이익집단의 요구를 강하게 받고 있는 미 의회가 통상을 주도할 경우 실제 협상을 이끌고 나가기란 어렵다는 게 정부 협상단의 일관된 분석이다. 의원들의 이해에 따라 협상이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다가 형해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대통령이 TPA 시한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협상측면에서 무차별 압박공세를 펴고 있는 미측에 우리도 '옵션'을 갖고 있음을 내비침과 동시에 우리 협상단에 미국의 '강공'에 말려들지 말 것을 주문하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인사는 "대통령의 언급이 이전과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FTA의 수위를 낮추거나 협상시한을 넘기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데 방점이 있다고 읽혀지지 않는다"며 "한 마디로 실리를 챙기는 데 중점을 두라는 것이며 '철저히 장사꾼의 원칙으로 협상에 임하라'는 언급이 이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김종수 기자 jsking@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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