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쪽 시한 얽매여 협상하는 나라는 한국 뿐
우리나라와 동시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한 말레이시아가 협상을 무기한 중단했다. 이에 따라 미국 행정부의 무역촉진권한에 얽매여 미국과 에프티에이 협상을 벌이는 나라로는 한국만 남게 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스티븐 노튼 대변인은 24일(미국 시각) “부시 대통령이 말레이시아와의 에프티에이 체결 의향서를 무역촉진권한에 따른 시한(3월31일) 안에 의회에서 제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최근 말레이시아 정부에 정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같은 시기인 지난해 6월부터 미국과 에프티에이 협상을 시작해 지난 2월 초 5차까지 진행을 하다가 협상을 중단한 상태다. 노튼 대변인은 무역대표부의 협상 중단 결정이 “말레이시아 정부가 5차 협상 때까지 우리가 제시한 요구안에 대해 내부에서 ‘정치적 컨센서스’가 필요하다며 답변을 계속 미루고 있는 데 따른 조처”라고 설명했다.
미-말레이시아 에프티에이 협상에서 양국 의견 차이가 큰 쟁점분야는 농산물, 서비스, 금융, 지적재산권, 투자자-국가 제소제도 등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과 유사하다. 미국 협상단 수석대표도 웬디 커틀러로 똑같다. 그러나 말레시이시아는 핵심 쟁점에서 미국 쪽 요구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한국 협상단과 뚜렷하게 대조적이다. 특히 금융과 서비스, 자동차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협상 초반부터 ‘필요에 따른 개방 원칙’을 고수하며 미국과 팽팽히 맞섰다.
양국 협상은 지난해 연말 미국이 말레이시아 쪽에 정부조달 시장에서 말레이 인종과 원주민 기업들을 우대하는 제도를 없애라는 요구를 하면서 파열음이 일었다.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 정부는 ‘정부조달 정책 등에서 취약계층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에프티에이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로 끝까지 버텨왔다.
협상 결렬 조짐은, 지난 1월 말 미 하원 톰 랜토스 외교위원장이 말레이시아의 이란 가스개발 계약 취소를 협상 선결조건으로 내걸면서 더 뚜렷해졌다. 미국 협상단도 이후 “이란과 가스개발 협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에프티에이 협상을 그만두겠다”며 말레이시아 쪽에 압박을 가했다. 그러자 라파다 아지즈 말레이시아 통상장관은 이를 ‘내정간섭’이라고 규정을 하고 “미국의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로 외교적 공방을 벌여왔다.
박순빈 송창석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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