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공세적이었던 분야]
수입차 관세 즉시 철폐해주고
수출차는 3000㏄ 아래만
자동차 협상에서 관세 부분은 우리쪽 의견이 일부 관철됐다. 우리의 대미 수출주력 품목인 3000㏄미만 승용차의 관세(2.5%)와 자동차 부품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3000㏄이상대형 승용차의 관세는 3년 이내 철폐하기로 했다. 상용차(트럭)의 관세(25%)는 앞으로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해나가기로 했다. 국내 수입되는 모든 미국차의 관세(8%)는 즉시 철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미국내 가격경쟁력 제고가 기대되고 국내 부품업체의 미국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미국 현지 생산이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익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우리는 세제개편과 환경기준 완화를 미국에 선물로 내주었다. 우선 자동차에 부과되는 특소세는 현행 5~10%에서 5%로 단일화하고 3년간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현재 5단계인 자동차세도 1000cc미만, 1000~1600cc, 1600cc 초과의 3단계로 축소된다. 이런 개편은 대형차가 많은 미국 수입차의 가격 인하 효과를 낳는다. 물론 국산 자동차나 유럽산 수입차들의 소비자가격도 같이 내려간다.
이와 함께 미국차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대폭 강화된 배출가스 허용기준(KULEV)을 적용하는 대신 캘리포니아 평균배출량 제도를 적용하고 4500대까지는 강화되기 이전의 허용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OBD Ⅱ) 장착 의무 시기도 2007년에서 2009년으로 유예시켜 줬다. 현재 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 기준으로 69만3124대, 금액으로는 87억1천만달러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미국차는 한해 5024대, 1억4207만달러 규모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반덤핑 비합산 조처’ 빠진채
무역구제위 설치는 “생색용”
무역구제 관련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에 줄기차게 요구했던 반덤핑 조처의 비합산 조처는 끝내 빠졌다. 비합산 조처는 미국이 특정 품목의 반덤핑 피해 판정 때 중국산이나 동남아산 등과 별도로 한국산만을 대상으로 피해 여부를 판정하는 제도다. 덤핑률이 한국산보다 높은 경우가 많은 중국산 등과 섞여서 판정을 받으면 아무래도 한국산마저 특정 미국산 품목에 피해를 줬다는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정부와 업계에서는 비합산 조처만 따내도 미국의 무역보복 조처에 따른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3분의 1 내지 절반 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를 해왔다. 그래서 협상단은 지난해 가을부터 무역구제 조처에 변화를 주려면 이를 미리 미 의회에 통보해야 하는 시한인 지난해 연말까지 “비합산 조처 등을 얻기 위해 협상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의회가 손대지 말라고 한 법률 개정 사항”이라며 끄덕도 하지 않았다.
다자 세이프가드 때 한국산은 예외로 해달라는 요구도 강제조항이 아니라 임의조항으로 결론났다. 미국이 한국산을 예외로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무역구제협력위원회는 한국의 요구로 설치됐다. 한국 협상단은 이를 통해 비합산 조처 등의 요구를 관철할 통로는 마련한 셈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 미지수다. 미국으로서는 비합산 조처 등 핵심 요구를 외면하면서 생색용으로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상력의 차이 때문에 위원회가 설치됐다해도 유명무실할 개연성이 많다. 미국은 한국이 비합산 조처 다음으로 강하게 요구했던 ‘팩츠 어베일러블(덤핑 판정을 위해 이용 가능한 자료 최대 활용)’도 협정문의 별도 조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위원회서 다룰 의제로만 합의해줬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미 세관 예고없는 수색권 주고
1598개중 200개 품목만 소득
섬유는 우리 협상단이 처음부터 공세를 펼쳐온 분야이다. 미국의 관세율이 12.5%로 다른 제품에 비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품목의 원산지 완화와 관세 즉시 철폐 등을 얻긴 했지만 미국이 워낙 보수적인 자세를 보여 결과는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전경련은 1598개 전 품목이 즉시 철폐되고 원산지가 완화되면 대미 수출이 해마다 4천억원 늘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협상 결과 200여개 품목만 즉시 철폐됐고 원산지 완화 품목은 여성재킷, 남성셔츠 등 20개를 살짝 웃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이 요구한 우회수출 방지를 위해 한국 업체로 하여금 온갖 경영정보를 정기적으로 미국에 제출하도록 약속했다. 이들 업체는 기업주나 경영진의 이름과 직위, 노동자의 수와 직종, 임금, 근로시간, 최저연령, 기계 대수 및 유형, 미국 바이어 명단 등을 미 세관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또 미 세관 당국은 한국 업체를 사전 고지 없이 마치 압수수색처럼 현장 조사를 하게 돼 있다. 업체가 이를 거부하면 특혜관세를 받을 수 없게 되며, 벌금도 물어야 한다. 법무부는 “기업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대미 수출 비중의 3%밖에 안되는 섬유의 수출 증대를 위해 기업의 노하우와 기본권, 그리고 사법주권을 내 준 셈이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미국이 공세적이었던 분야]
제약특허 4~10월 연장 효과
‘최저가격보장’은 막판 철회
의약품 분야에선 미국 쪽 핵심 요구인 특허 관련 쟁점에서 한국이 대부분 밀리고 말았다. ‘특허와 허가 연계’를 비롯해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의 자료독점권, 허가 지연에 따른 특허 기간 연장, 독립적 이의신청기구 설립 등이 합의됐다. 미국의 값비싼 신약이 국내에서 독점판매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게 됐다. 따라서 약값 부담이 늘고 건강보험 재정 악화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대신 신약의 최저가격 보장제나 물가 인상에 따른 약값 인상 등은 미국이 막판에 철회했다.
‘특허와 허가의 연계’는 특허를 가진 제약사가 국내 제약사에 특허 소송을 걸면 복제약품 허가 절차가 멈춰지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에서는 해당 제약사가 30개월의 특허 연장 효과를 누린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국내에서는 4~10개월(특허권 소송에서의 가처분신청 기간) 정도의 연장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료독점권은 국내 제약사의 개량신약 출시를 늦추고, 독립적 이의신청기구는 신약의 보험 적용 및 가격 결정에서 압력기구가 될 수 있다. 아울러 특허 의약품의 적절한 가치를 인정하기로 한 조항은 그 뜻이 모호해 약값 결정 등에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국이 얻은 것은 국내 제약사 복제약품의 인정인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관련 규정 등의 변화가 필요해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미국인 채널사업 소유 가능
스크린쿼터 늘릴 길 막혀
방송채널사업자(PP)의 외국인 투자제한이 사실상 없어져 국내 유료 방송 콘텐츠 시장이 개방됐다. 현행 방송법상 보도와 종합편성을 제외한 일반 채널사업자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49%로 제한됐으나, 이번 협상에선 직접투자 제한 조항은 유지하되 외국인 간접투자는 지분 한도를 10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이 국내에 밥인을 세운 뒤 이 법인을 통해 국내 방송채널사업자의 지분을 100%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방송채널사업자의 국산 프로그램 의무 편성비율도 영화의 경우 현행 25%에서 20%로, 애니메이션은 35%에서 30%로 낮춰졌다. 이밖에 방송채널사업자의 외국인 개방은 협정 발효 후 3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번 협정으로 국내 영화산업은 또 한차례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쿼터를 ‘미래유보’로 하자는 우리 쪽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현재유보’로 합의돼, 앞으로 현행 73일인 국산 영화 의무상영 일수는 더 늘릴 수는 없고, 줄일 수만 있게 됐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단기 세이프가드’ 막판 과실
무점포 인터넷영업은 허용
금융 분야에선 우리 쪽이 단기 세이프가드(긴급 송금 제한) 인정이라는 과실을 챙겼다. 우리 쪽은 단기 세이프가드가 위기시 발동하는 ‘예외적 조치’로 반드시 협정문에 명시돼야 한다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으면서, 외국과의 협정에서 전례가 없는데다 자유로운 자금이동을 저해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던 미국 쪽을 설득했다.
대신 미국 금융기관이 우리나라에 영업 점포를 두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 등을 이용해 금융서비스를 공급하는 ‘국경간 거래’가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이로 인해 국내 자산운용업과 보험 중개업 및 보험 부수 서비스업 등이 영향을 받게 됐다. 특히 보험중개업은 국경 간 거래를 허용하되 비대면 방식을 채택해 외국 보험사나 중개업자가 직접 사람을 보내지 않고 인터넷 등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단, 개방 범위는 손해보험업에 속하는 해상·항공보험으로 한정했다. 우리 쪽은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국내 정책금융기관들을 협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대가로,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금융기관이 미국 등 제3국에서 고객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정보의 국외위탁을 허용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조세·부동산정책은 빠졌지만
‘드문 경우’ 제소가능 논란여지
국내 법조계와 학계 등으로부터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대부분 미국쪽 요구대로 타결됐다. 두나라는 대표적인 공공정책인 조세 및 부동산 정책이 원칙적으로 국가의 ‘수용’행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지만, ‘드문 경우에 한해서는 간접수용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뒀다. ‘드문 경우’ 가 무엇을 의미히는 지에 대한 해석을 놓고 훗날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보건·안전·공공질서 등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우리 정부가 투자협정을 벗어나는 조처를 할 수 있는 ‘일반적 예외’ 조항을 뒀지만, 신규 투자자에게만 예외가 인정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즉 기존 투자자한테는 안전, 공공질서와 관련한 분야이더라도, 정부의 규제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일반적 예외가 적용되는 조건과 관련해, 우리 쪽이 ‘정부의 입증 책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에 ‘진정하고 충분한 위협이 있을 때’라는 미국 쪽 요구 조건을 수용했다. 또한 우리 현행 헌법이 투자자의 재산권의 범위를 상당히 좁게 해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번 협정에선 영업권, 반사적 이익 등 무형의 경제적 가치까지 포함시켜 미국 쪽 입장이 크게 반영됐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쇠고기 사과 배…대부분 개방
7~20년 ‘유예시간’만 확보
‘예외 없는 관세철폐’라는 미국 쪽의 파상공세가 대단했던 농업분야는 한국의 역대 에프티에이 사상 가장 큰 폭의 개방을 수용했다. 세관 분류 기준으로 1531개 품목의 37.6%인 576개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했다. 이는 수입액 기준으로는 55.4%에 해당한다. 하지만 주요 민감품목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관세철폐, 계절관세 적용,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도입 등을 통해 충격을 줄이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번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쇠고기는 현재 40%인 관세율을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하고 세이프가드를 두기로 했다. 돼지고기는 냉장육 10년, 냉동육 7년, 달걀은 11~15년으로 관세철폐 기간을 합의했다. 오렌지는 국내산 감귤 유통기간인 9월부터 2월까지는 현행 50%의 관세를 유지하되 그 밖의 시기에는 계절관세 30%를 7년 동안 적용한 뒤 철폐한다. 또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을 연간 2500톤 부여하기로 했다. 콩·감자·분유·꿀은 소량의 저율관세할당 물량을 주는 대신 현행 관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예외 인정을 받았다. 우리 협상단이 일관되게 “미국 쪽이 언급하기만 해도 협상을 깨겠다”고 했던 쌀은 결국 개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농업분과 고위급 협상 수석대표인 민동석 농림부 통상정책관은 이번 결과에 대해 “선방했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직 품목별 관세 철폐 시기와 방식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아 농업분야의 정확한 피해 예상은 어렵지만, 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자료를 보면 한-미 에프티에이를 통해 농산물 관세가 10년 동안 단계적 인하를 거쳐 없어질 경우 쇠고기·돼지고기·사과·감귤 등 26개 주요 품목의 생산은 한 해 8700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보호기간 20년늘려 70년으로
온라인 일시저장도 권리인정
지적재산권은 산업과 기술분야를 다루는 특허·의장·상표권과 문화·예술 분야의 저작권으로 나뉜다. 이번 협상에선 특히 저작권과 관련해 미국 쪽 입장이 많이 반영됐다. 두 나라는 이미 1차 협상에서 국제적 추세에 따라 지적재산권의 보호 기간을 현행 50년(저작자 사후 기준)에서 70년으로 20년 늘리기로 합의했고 최종 협정문에도 이같은 내용을 담았다. 다만 지적재산권 보호 기간 연장은 협정문 발효 후 2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밖에 저작권 침해에 대한 단속 강화 기준을 마련했고, 온라인상 정보의 일시적 저장도 저작권자의 권리로 인정하기로 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