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산하단체·기관·기업까지 총동원
“협정내용도 모르는데 홍보하라니…” 반발
“협정내용도 모르는데 홍보하라니…” 반발
“우리 업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별 상관도 없다. 이미 무관세다. 관심이 있었다면 반덤핑 규제완화인데 이번 협상에서 우리 요구가 관철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에프티에이 효과를 홍보하라니….” (철강협회 관계자)
“어쩌겠느냐. 정부가 하라면 그 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으냐. 정부가 평소에는 자율경영을 강조하다가 요즘에는 국가시책의 전도사로 나서라고 해 사실 좀 헷갈리긴 한다.”(한국전력 관계자)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 이후 지지 여론을 확산하려고 산하 단체와 기관들은 물론, 민간 단체와 기업들까지 총동원하고 있어 ‘과잉홍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부 산하 단체들은 협상 타결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찬성 여론 몰이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에프티에이 취지인 시장자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9일 <한겨레>가 입수한 산업자원부의 ‘한-미 에프티에이 산업부문 홍보계획’ 문건을 보면, 산자부는 산업 부문 관련 단체 28곳에 이달 중 릴레이 지지성명서 발표를 유도하기로 했다. 산자부는 이달 전반 2주간은 업종별 단체 16곳, 후반 2주간은 기능별 단체 12곳의 에프티에이 성명 발표를 추진하기로 했다. 성명 발표 대상에는 협회 등 단체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 상장기업도 포함돼 있다.
산자부는 ‘철강화학팀은 철강협회, 에너지자원정책팀은 가스공사·한전’ 등 부내에서 에프티에이 지지성명을 유도할 팀까지 지정해 놓고, 언론에는 ‘전문가 집단의 집중 기고를 추진’하기로 했다. 기고는 최소 24차례 싣기로 계획하고 있는데 12곳은 이미 특정 언론사 이름과 기고 날짜까지 정해놓은 상태다.
정부는 아울러 한-미에프티에이체결지원위원회 주관으로 각 부처가 참여한 가운데 다음달 중순까지 업종별 거점 지역도시 11곳을 돌며 ‘한-미 에프티에이 타결 보고대회’를 열 계획이다. 산자부는 여기에서 ‘한-미 에프티에이의 당위성과 긍정적 효과를 집중 홍보’하는 동시에, 기업인 찬성 서명운동을 받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자동차공업협회 등 업종 단체들에 협조를 요구해 놓았다.
이와 관련해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민간단체 임원은 “협정문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을 차출하고 따로 예산까지 마련해 에프티에이 홍보에 나서야 하느냐”며 “과거 ‘새마을운동’을 펼칠 때의 국가동원체제가 되살아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신익수 가스공사 노조위원장도 “정부가 세부적인 타결 내용이 확인되기도 전에 대대적인 여론몰이로 성과를 포장해서 홍보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며 “특히 산하기관에 대한 통제권을 악용해 산하기관을 에프티에이 홍보의 앞잡이로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에프티에이 협상 성과를 사실과 다르게 홍보하는 사례도 있다. 청와대는 홈페이지의 ‘한-미 에프티에이 대차대조표’를 보면, △노동 분야의 공중의견제출제도 도입 △환경 분야의 다양한 대중참여 방안 마련 △상품 분야의 물품 취급 수수료 폐지 등 미국이 원해서 수용했거나 미국이 모든 에프티에이에서 해주는 조처를 ‘우리가 얻은 것’으로 포장했다. 또 무역구제 분야의 ‘반덤핑 조처 요건 강화’, 서비스 분야의 ‘전문직 대미 진출 기반 마련’ 등 협상에서 관련한 핵심 조항을 얻지 못한 분야마저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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