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구제 분야 쟁점별 협상 타결 내용
FTA ‘득실’ 깊이보기 ⑩ 무역구제
“한국은 의회를 구실로 완강하게 버티는 미국 협상단과 무역구제 분야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가치는 심각할 정도로 저하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 찬성론자인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자신의 저서 〈한미 에프티에이 역전 시나리오〉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실제로 우리 협상단은 미국의 무역구제 조처의 완화를 자동차·섬유와 함께 최대의 수혜 분야가 될 것으로 꼽아왔다. 하지만 타결 내용을 보면, 뭘 얻었는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게 수출기업들 얘기이다. 되레 무역보복 소지만 키운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든다. 신속 해결절차·스냅백 등 일방적 요구 받아들여
애초 공언했던 비합산 조처 등은 하나도 못 따내 용두사미=출발은 그럴듯했다. 무역구제 분과는 유일하게 한국이 주장해 설치된 분과였다. 여기서는 반덤핑관세나 상계관세 또는 긴급수입제한조처(세이프가드)와 같은 무역보복 조처의 완화를 다뤘다. 협상단은 지난해 12월 5차 협상부터 무역구제에 대해 집중 공세를 펼쳤다. △비합산 조처(한국산을 중국산 등과 별도로 분리해서 산업피해 판정) △팩츠 어베일러블(조사 자료의 자의적 활용) 개선 △다자 세이프가드 발동 때 한국제품 제외 등 요구사항을 6개로 간추려 미국을 거세게 압박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 협상단은 “무역구제에 협상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산업자원부와 무역협회는 “비합산 조처만 받아들여져도 미국의 반덤핑 보복 조처가 적어도 3분의 1은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이 미동도 않자, 한국 협상단은 슬그머니 핵심 요구사항들을 모두 접고 만다. 미국이 여러나라 제품에 대해 한꺼번에 수입을 금지하는 다자 세이프가드 발동 때 한국산은 ‘의무적’으로 제외해달라는 애초 요구도 ‘사실상’ 포기했다. “의무화는 법률 개정이 필요해 곤란하다”는 미국 주장에 밀려 선택사항으로 합의했다. 한국산을 제외해주면 고맙고, 아니면 말고 식이 됐다. 비합산 조처 역시 미국의 법률 개정사항이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이 비합산 조처 다음으로 중요시 여겼으며, 법률 개정 사항도 아닌 ‘팩츠 어베일러블’의 개선마저 물거품이 됐다. 무역구제위원회 설치를 성과로 내세우지만 본 협상에서도 따낸 게 거의 없는 한국이 위원회를 통해 뭘 얻을지 미지수다. 특히 위원회의 논의 대상에서 비합산 조처와 다자 세이프가드는 아예 빠져 있다. 나머지 △조사개시 전 사전협의 △가격약속 활성화도 속빈 강정이다. 우리는 “미국 법을 개정해 특별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어떻게든 반덤핑관세 부과까지 이르지 않는 구속력 있는 장치로 만들려 했다. 하지만 미국 법 그대로 적용됐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사전 협의와 가격 약속 조항에 반덤핑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의무 규정이 없어 실효성 여부는 운영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혹 떼려다 혹 붙였나=자동차·섬유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했던 우리 협상단은 되레 미국의 무역보복 수단을 확대시켜 줬다. 미국은 자동차 분야 협상 과정에서 지구상 어느 자유무역협정에도 없는 신속 분쟁해결절차를 강요했다. 배기량 기준 세제의 개편과 환경·안전 관련 기술 표준에 대한 합의사항을 한국이 이행하지 못할 경우 최대한 빨리 무역보복을 하겠다는 주장이다. 신속 분쟁절차는 일반 분쟁절차에 견줘 소요 기간이 절반이다. 특히 미국은 신속 분쟁절차에서 위반 판정이 나면 일반 절차처럼 위반 사항을 시정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특혜관세를 박탈하는 ‘스냅백’ 제도라는 괴물까지 고안해 냈다.
한국 수출업계가 보는 미국의 주요 비관세 장벽
대미 수출기업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 관세장벽 제거보다 무역구제 절차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부산항 신선대 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가 가득하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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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양보→강수→후퇴…꿈쩍않는 미에 한국만 우왕좌왕
미국 협상단 의회 업고 배수진
중간에 국회 문건 유출 사태도 한국의 무역구제 협상은 패착과 후퇴로 점철했다. 애초 미국한테 요구한 개선 사항은 15개나 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5차 협상을 앞두고는 6개로 줄었다. 그래도 한국 협상단의 미국을 향한 압박 수위는 이전보다 거셌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이를 악물고 해보겠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5차 협상 때 한국이 제시한 6개 사항에 대해 미국이 수용거부 의사를 밝히자, 한국 협상단은 무역구제 분과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미국의 관심이 높은 자동차와 의약품 2개 분과마저 함께 중단시키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럴 까닭이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무역구제는 다른 분야와는 달랐다. 우리의 요구사항이 미국으로서는 연방법률 개정사항이어서, 미 의회 통보 시한이 2007년 3월 말이 아니라 2006년 12월 말이었다. 그만큼 미 의회의 관심이 더 많은 분야였다. 우리 협상단이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뜻도 된다. 미 협상단은 미 의회를 배수진으로 삼고 꼼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국은 지난 1월 초만 해도 핵심 요구였던 비합산 조처에 대해 미련을 못버렸다. 톤다운(약화)된 비합산 조처를 제시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미국 내 수입시장 점유율이 낮은 품목 만이라도 한국산은 비합산해달라는 요구를 할 셈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전혀 받아들일 낌새가 없자, 다시 전면적인 비합산 조처 수용을 표면적으로 내걸었다. 비합산 조처를 관철시키겠다기 보다는 이를 지렛대로 삼겠다는 전략이었다. 지난 1월 중순 국회 문건 유출 사태 때 문건의 핵심 내용도 이것이었다. 다자 세이프가드 때 한국산 제외 요구 역시 의무 조항이 아닌 임의 조항으로 가닥을 잡았다. 알려지지 않은 비밀 하나가 또 있다. 무역구제는 막판 연장협상에서도 주요 이슈였다. 한국은 협상 타결 이틀 전에 “팩츠 어베일러블 개선이라도 협정문에 별도로 명시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무역구제위원회에서 추후 논의하자”고 버텼다. 미국 주장대로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타결 뒤 “팩츠 어베일러블이 무역구제위의 논의 대상에 포함돼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송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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