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족집게’ 경제지표
[깊이보기] 경제전문가들의 ‘통계 가려읽는 법’
<이코노미스트>는 여성속옷 판매량에 가늠자
한해 공식통계만 400여종…보물도 ‘보기나름’
<이코노미스트>는 여성속옷 판매량에 가늠자
한해 공식통계만 400여종…보물도 ‘보기나름’
통계의 홍수 시대다. 국내에서 한해 쏟아져 나오는 공식 통계자료만 400여종. 하루에 하나 이상의 통계가 우리를 공습해댄다.
실로 오랜만에 ‘경기 회복론’이 솔솔 나오는 요즘, 정확한 경기 진단을 위해 수많은 통계더미 속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할까. 경제 지표로 ‘먹고 사는’ 국내 전문가들과 함께 옥석가리기에 나서보자.
애인같은 통계는? = “당신이 애인처럼 여기는 경제 지표는 무엇이죠?” <한겨레>가 내노라 하는 경제 전문가들에게 물었더니, 단연 통계청의 산업활동 동향이 가장 많이 꼽혔다. 김재천 한국은행 조사국장은 “요즘처럼 정교한 경기 판단이 필요할 때는 생산·투자·소비 등 실물 지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도 “실물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데 있어 설비투자 증가율이나 산업생산 증가율 만한 자료는 없다”고 못박는다. 김영익 대한투자증권 부사장은 ‘금융시장의 가장 중요한 가늠자’로 산업활동 동향에 나오는 경기선행지수를 들었다.
소비 관련 지표도 갈수록 인기를 더한다. 최석원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경제가 성숙할수록 경제의 움직임은 소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소비 관련 지표 가운데서도 소비자 기대지수 같은 심리 지표를 특히 눈여겨 본다”고 말했다. 고승덕 로드투자자문 대표도 “우리나라에선 소비자 심리지수가 실제 내수 경기보다 두어달 빨리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지표 흐름을 보면 머지않아 소비 회복이 가시화될 것”이라 내다봤다.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 = 정례적으로 발표되는 통계 가운데 특정 세부 항목에 주목하거나, 1차 통계를 나름대로 가공해 사용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자 기대지수 가운데서도 특히 고소득층 심리 동향에 주목한다. 전체 소비 경기에 끼치는 파급력이 큰 탓이다. 송 연구위원은 또 달러 기준으로 발표되는 수출 통계를 원화 기준으로 바꿔 살펴본다. 환율 변동에 따른 착시 효과 없이 수출 경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란다.
최석원 팀장은 한은이 매달 내는 금융시장 동향 가운데 기업 자금 조달 자료를 투자 선행 지표로 여긴다. 최 팀장은 “회사채를 발행하건 대출을 늘리건간에 기업의 자금 조달이 늘어난다는 건 결국 투자 증대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라며, “최근 기업 자금 조달이 증가세를 보이는 건 긍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통계의 함정을 피하라 =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도시 근로자 가구 월 평균 소득은 376만4천원. 자신의 호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이 조금도 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도시 근로자 가구 조사엔 자영업자가 빠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통계에는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임금상승률 통계도 마찬가지다. 상용근로자의 절반 정도 되는 비정규직은 통계 속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와 ‘지표 경기’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통계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흔히 상승률(증가율)만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만 봐서는 안된다. 지금 상태가 어디쯤인지 절대적인 수준을 우선 살펴봐야한다.” 이성태 한은 총재의 지론이다.
또 전문가들은 경제 흐름을 읽을 때 공식 통계 뿐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제 지표’들도 활용한다. 하루 한두시간씩 목욕탕에서 각종 통계 자료들을 섭렸다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가끔 세탁소 주변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사람이 늘어나면 경기가 개선될 징조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여성 속옷 판매량이 늘면 경기 후퇴의 신호라고 본다. 경기가 나빠 비싼 겉옷을 사기가 어려워지면 속옷이라도 잘 챙겨입자는 심리가 동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김영익 부사장은 “신문 1면에 경기가 나아졌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경기가 개선된지 한참이 지난뒤더라”고 말했다. 최우성 안선희 김진철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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