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제안 내용
미, 21~22일 협의회 요청…‘신통상정책’ 반영 수정안 제시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불가하다’고 밝혔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곧 벌어지게됐다. 미국 통상법에 따른 일정 얽매여 불과 10개월여만에 협상을 마무리한 한국 협상단이 또 다시 미국의 일방적 요구로 ‘끌려다기기 협상’에 나서는 모양새이다.
외교통상부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16일(현지시각)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신통상정책’ 등을 담은 협정문 수정안을 공식 제안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와 함께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나서는 양국 협의회를 21~22일 서울에서 열자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통상교섭본부는 “미국 제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관계 부처간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며 아직까지 재협상 여부를 공식화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부 고위당국자는 17일 “미국 쪽 제안 내용을 검토해 보니 별문제가 없다. 단지 이미 마무리한 협정 문안을 고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며,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했다.
미국 제안은 미 의회와 행정부가 지난 5월 중순 합의한 ‘신통상정책’을 대부분 반영했다. 여기에다 미 무역대표부 자문위원회가 협정문 평가보고서에 지적한 사항도 일부 반영됐다. 세부 안건은 노동·환경·의약품·안보·정부조달·항만안전·투자 등 7가지에 분야에 걸쳐 있다. 정부는 미국의 이번 제안에 따른 협상을 ‘추가 협상’ 또는 ‘추가 협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지난 4월2일 타결된 협정문의 보완은 물론이고 일부 조항을 수정·삭제해야 하는 안건도 들어 있어 ‘재협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미국의 제안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야는 노동이다. 미국은 국제노동기구(ILO)의 1998년 선언에 들어 있는, 결사의 자유 등 8가지 핵심 기준을 법령이나 관행으로 채택하도록 협정문에 못박자고 제안했다. 이를 따르게 되면, 현행 국내 노동법령과 노사 관행은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당장 공무원노조 가입 제한이나 복수노조 허용 유예 등 그동안 노·사·정 간에 뜨거운 논란이 벌어져 이미 정리된 쟁점들을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
미국은 또 노동·환경 관련 협정을 위반할 때에는 관세혜택 철폐와 같은 무역보복이 가능하도록 일반 분쟁해결절차를 적용하자고 요구했다. 기존 협정문에선 ‘특별 분쟁해결절차를 밟아 위반국에 과징금을 부과하되 제도개선에 사용하도록 한다’는 수준으로 합의되어 있다.
환경 분야에서는‘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등 7개 다자간 환경협약의 이행을 협정문에 넣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환경 관련 국제협약 가운데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나 ‘생명안전의정서에 관한 협약’ 등 미국에 불리한 협약들은 제안 내용에서 빠져 있어, 자유무역협정의 반환경적 영향에 대한 ‘면피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밖에 미국의 ‘필수적 안보’를 고려한 미국 정부 조처는 투자자-국가 소송(ISD)이나 국가간 통상분쟁에서 예외로 인정하고, 정부조달 시장 참여하는 협정 당사국 기업에게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에 따른 노동조건 충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며, 미국에서 외국인투자자는 미국 투자자보다 더 강한 보호를 받지 않도록 ‘역차별 금지’를 협정문에 넣자는 등 다른 제안들도 협정문안으로 채택될 경우 미국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박순빈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