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미수 및 신용거래 관련 대책 일지
신용거래 연속 재매매 허용뒤 규모 급증
뒤늦은 축소 지시에 증권사들 볼멘소리
뒤늦은 축소 지시에 증권사들 볼멘소리
증권사에서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융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금융감독당국이 규제에 나섰지만, 정작 빚 투자를 부추긴 곳은 금융감독당국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하반기에 미수거래를 제한하는 대신 신용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안의 핵심은 미수거래를 한 투자자가 결제를 못하면 한달간 미수거래를 금지하는 ‘미수거래 동결계좌제’를 도입하는 대신, 신용거래 활성화를 위해 신용거래 연속 재매매를 2007년 2월부터 허용하는 것이다.
신용거래 연속 재매매란, 투자자가 주식을 매도해 계좌에 입금될 예정금액을 신용 재매수를 위한 신용거래 보증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신용거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신용계좌 설정 보증금(100만원)도 신용매수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나 이런 조처는 미수거래로 인한 단타 폐해를 없앤다는 목적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신용거래 관련 제한을 완화해줌으로써 현재의 어려운 국면을 자초했다는 게 증권가 안팎의 평가다.
신용거래나 미수거래는 기본적으로 외상 거래다. 리스크 관리에 취약한 개인투자자에게는 자금 상환일이 긴 신용거래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은 신용거래 위험성은 간과한 채 규모 제한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고 규제만 완화했다. 이 틈을 타 증권사들은 신용융자 담보유지비율을 낮추고 신용융자 가능 종목을 확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개인들에게 마구 돈을 빌려줬다. 신용융자 확대는 증권사 영업사원들의 성과급과도 연결돼 있어 이런 현상은 더 기승을 부렸다. 이에 따라 일부 증권사 신용융자 잔고는 자기자본의 4배를 넘기도 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신용융자 잔고가 지난 25일 7조원을 넘어서자 부랴부랴 증권사 임원들을 불러들여 반강제적으로 규모를 축소할 것을 권고했다. 신용융자 규모를 5천억원 이하, 자기자본 40% 이하로 줄이되 보름 이내에 완료하라는 게 그 내용이었다. 한 증권사 영업담당 직원은 “금융당국이 신용거래 활성화를 유도해놓고 뒤늦게 모든 책임을 증권사로 돌린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증권사들은 28일 고객의 신용도에 따라 신용거래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되, 신용잔고를 줄이는 시한을 8월 말까지 늦춰달라고 금감원에 건의했다.
신용융자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도 금융감독당국은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보여주기식’ 처방만 내놨다. 금융감독당국 고위 관계자는 신용융자 활성화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지난해 미수거래 제도 자체를 개선한 것만 해도 큰 성과이며, 신용융자 부분은 일부 과열되게 빌려준 증권사가 문제일 뿐 전체적으로는 미국·일본 등에 비해 건강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총거래대금 가운데 신용거래 대금 비중은 13.28%를 차지하며, 불과 넉달 만에 미·일 수준(13%)까지 올라왔다. 현실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셈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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