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가 또다시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의 국내자본 역차별론을 제기하며 경영권 방어장치를 요구하는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최근 경영권 방어장치를 오히려 완화하는 추세여서, 세계시장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많다. ■ 다시 불거진 역차별론=경제 5단체장들은 지난 30일 한덕수 경제부총리와의 간담회에서 국내기업들이 외국자본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재차 주장했다. 유망기업을 인수할 때 국내자본이 불리하고, 경영권 경쟁시장에서 공격하는 외국자본에 비해 방어하는 국내자본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재계는 지난해 재벌의 출자를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주장할 때도 역차별론을 들고나왔다. 전경련은 “외환위기 이후 경영권 보호장치들이 상당 부분 완화돼 공격자와 방어자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불균형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기존 대주주들은 경영권 불안이 가중되고 있고, 국내 금융 및 산업자본이 외국자본에 잠식당했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관련 대책으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자에 대한 의무공개매수제도의 재도입과, 제3자 신주인수권 배정요건 완화, 차등의결권주 발행허용, 출자제한 폐지 등을 요구한다. 상의도 미국처럼 독약처방(적대적 인수합병시 기존 주주에게 주식을 싼값에 부여), 황금낙하산(임원이 합병 등으로 중도해임당할 때 많은 퇴직금을 지급) 등을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M&A 국내자본 불리…경영권 방어장치”요구 거세
전문가들 “시장경제 원칙 역행…지배구조 개선부터” ■ 글로벌 흐름과 시장경제 원칙 역행=차등의결권, 황금낙하산, 독소조항, 황금주(인수합병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주식)는 선진국에서 시행 중이지만, 최근에는 제도 철폐나 완화 요구가 확산 중이다. 스웨덴의 에릭슨은 ‘1주 1의결권’ 원칙에 위배되는 차등의결권의 비율을 기존 1 대1000에서 1 대 10으로 완화했다. 황금낙하산과 독소조항도 아예 없애거나, 주주의결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2002년 이후 판례를 통해 각국의 황금주 관련규정에 위반판결을 내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도 차등의결권에 반대한다. 이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시장감시를 통해 경영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순기능을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또 현행법상으로도 흔히 ‘5%룰’로 불리는 주식대량보유 보고의무제 등 여러 방어책이 있고, 최근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더욱 강화됐다.
정부 내 엇박자도 논란에 한몫한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최근 역차별론을 두둔하는 말을 했지만, 한덕수 부총리는 31일 관훈토론회에서 차등의결권주에 반대했다. 전문가들은 외국 투기자본의 폐해는 막아야겠지만, 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하는 재계가 경영권 방어장치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는 “가장 좋은 경영권 방어는 지배구조를 개선시켜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인데, 재계는 정작 지배구조 개선 정책에 반대한다”고 꼬집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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