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목적회사를 통한 투자은행의 투자 흐름도
대형 투자은행들 ‘서브프라임 손실’ 잇단 고백
“손실 더 있을 것” 불신 번져…시장 불안 확산
“손실 더 있을 것” 불신 번져…시장 불안 확산
‘보이지 않는 손실’이 세계 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서브프라임 바이러스’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직접 관련된 헤지펀드와 부채담보부증권(CDO) 시장을 지나, 기업들의 일상적인 자금 조달 무대인 기업어음(CP) 시장으로까지 확산되면서 대형 투자은행들마저 잇따라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손실’이 더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
■ “아무도 믿지 못한다”=애초 고수익·고위험(투기등급) 투자에 나섰던 일부 헤지펀드의 문제로 인식돼 온 서브프라임 사태는 이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계기는 대형 투자은행들의 피해가 잇따라 드러나면서부터다.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유에프제이(UFJ)는 15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미실현 손실이 7월 말 기준으로 약 4260만달러(392억원)에 이른다고 털어놓았다. 독일의 아이케이비(IKB)와 프랑스의 비엔피(BNP)파리바 등 유럽계 투자은행들에 이어, 아시아권 은행마저 위기에 감염된 것이다. 특히 미쓰비시유에프제이는 투자 자산의 97%를 가장 높은 신용등급인 AAA 등급 상품에 투자하고도 손실을 입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같은날 일본 3위 은행인 스미토모미쓰이 파이낸셜그룹 역시 6월 말 현재 수십억엔대의 손실을 입었다고 공개했다.
미국계 대형 투자은행들도 위기의 한가운데로 속속 끌려오고 있다. 씨티그룹이 신용 사업에서 7억달러 가량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밝혀진 데 이어, 13일에는 세계 투자은행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골드만삭스가 대표 펀드인 골드만에쿼티오퍼튜니티스(GEO)에서 8월 들어서만 28%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손실이 확인될 때마다 세계 증시가 휘청거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선 지금까지 드러난 대형 투자은행들의 손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는 의심이 확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4일 “‘이제 시장에선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생각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원 푸르덴셜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상황이 단순한 유동성 위기를 넘어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변하고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들의 긴급 자금 수혈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말했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은 나흘 동안 2117억유로(270조원)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시장에 쏟아부었지만, 회사채 평균 가산금리는 0.03~0.05%포인트에서 0.25~0.30%포인트로 급등했다. 자금 경색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도전받은 금융감독 당국=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실’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는 데는 대형 투자은행들의 이른바 ‘첨단 투자 기법’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게 주된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대표적으로 ‘에스아이브이’(SIV·Sructured Investment Vehicle)로 불리는 투자 방식을 꼽는다. 에스아이브이는 자산을 담보로 단기 기업어음(ABCP)을 발행한 뒤 그 돈으로 고수익·고위험 투자에 나서기 위해 설립된 일종의 특수목적회사(펀드)를 말한다. 2000년 200억달러에 불과했던 자산담보부 기업어음 시장은 현재 1조달러 규모로 고속 성장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에 투자했던 에스아이브이가 손실을 입으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대형 투자은행들로 전염되고 있는데다, 정작 그 정확한 실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에스아이브이를 통한 거래는 투자은행의 재무제표에도 잘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블랙 거래’인 경우가 많다. 결국 투자은행 스스로 상세한 투자 내역과 손실 규모를 밝히기 전에는 누가 얼마를 투자해 얼마의 손실을 입었는지 알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각국의 중앙은행과 금융감독 당국의 무능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대형 투자은행들이 활용하는 첨단 금융기법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데 반해, 중앙은행이나 금융감독 당국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는 중앙은행과 금융감독 당국이 시장의 플레이어들보다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2002년 엔론 사건 이후 금융감독 기능이 또 한차례 도전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16일 대만의 주식투자자들이 증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대만 자취안(가권)지수는 4.55% 떨어진 8201.37을 기록했다. 대만/AP 연합
16일 홍콩에서 행인이 항셍지수가 게시된 한 은행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날 항셍지수는 3.7% 떨어진 2만585.14를 기록했다. 홍콩/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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