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으로 간 ‘대한민국 신기술’
고달픈 중소기업 2제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10대 신기술’로까지 선정된 한 반도체 제조장비가 법정에서 수난을 겪게됐다.
이 장비를 개발한 중소업체 퀄리프로나라테크(나라테크)와 엘지그룹의 계열사 실트론이 맞고소를 하며 ‘독자개발 기술’과 ‘대기업 기술이전 산물’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나라테크가 생산하는 실리콘 웨이퍼용 소재 제작장비인 ‘그로워’는 국내업체 가운데 실트론 외엔 사줄 데가 거의 없다. 중소기업이 사실상 수요독점업체인 대기업에 맞서게 된 사연은 이렇다.
두 회사는 지난 2003년 ‘그로워’의 연구·개발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안정적인 수요·공급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제3자 판매와 구매 금지조항’을 넣었다. 또 실트론은 2008년까지 73대의 그로워가 필요하다는 수급계획서를 이 협약에 첨부했다. 하지만 실트론은 지난해까지 겨우 16대의 물량만 발주했을 뿐이다. 나라테크의 엄상융 부사장은 “3자 판매금지를 해놓고 발주를 안하면 죽으라는 뜻 아니냐”고 반문했다.
반도체 업체 ‘나라테크’
“독자 기술…이제와서 장비 안사가면 어쩌라고” 엘지계열사 ‘실트론’
“공동 기술…3자판매 금지 저쪽이 먼저 어겨” 게다가 협약식 체결 직전 실트론은 그로워의 설계도면과 캐드(CAD) 파일까지 요구해 넘겨받았다. 지난해 중반 이후 실트론은 다른 중소업체로부터 그로워를 공급받고 있는 상태다. 중소기업인 나라테크는 세계에서 4번째로 12인치 잉곳(웨이퍼의 원료)을 만드는 그로워를 독자개발해 신기술 인증,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등 각종 화려한 수상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요업체인 실트론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실트론의 경영진단팀 이경화 부장은 “우리와 계약관계를 맺었던 일본업체의 도면을 넘기고 우리 직원들을 상주시키며 공동기술개발을 한 것”이라며 “설계도면을 제출 받았던 건 틀린 부분 지적을 위한 ‘기술지도’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나라테크가 먼저 제3자 판매금지를 어기고 지난해 이 첨단기술을 미국업체에까지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이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것도 독자기술이 아니라 “국산장비화에 성공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실트론 쪽은 덧붙였다. 이에 대해 엄상융 나라테크 부사장은 “우리가 받은 기술지도라곤 일본업체의 사용설명서를 받은 게 전부”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해 실트론이 나라테크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 맞서, 나라테크는 지난 3일 실트론을 상대로 3천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과 형사고소를 제기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하도급거래 혐의로 제소한 상태다. 이 소송은 자본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시켜주는 ‘소송구제제도’를 이용한 첫 사례라, 앞으로 비슷한 이유로 중소기업의 대기업에 대한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죽이기인지, 공동개발과 판매금지를 어기고 중소기업이 첨단기술을 국외에 유출한 것인지, 앞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다툼’은 법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IFA’ 공룡들 속에서 분투했지만…
“언제까지 삼성만 바라볼 순 없잖습니까?”
중소 전자업체인 디오스텍은 올해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영상음향기기전시회(IFA)에 참가했다.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해 무선으로 엠피3 플레이어를 들을 수 있는 스트레오 이어폰을 주력 제품으로 들고 나왔다. 소형 카메라 렌즈를 만들다 지난해 독자적인 기술로 이어폰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대기업 공급선을 ?돗鄕嗤? 이 회사의 목표는 전세계 엠피3 플레이어의 60%를 차지하는 애플의 아이포드 시장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손흥기 국외판매총괄 매니저는 “기술력만 믿고 국외 바이어를 찾아 나섰는데 예상보다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5일(현지시각) 폐막하는 이번 전시회에선 대형 글로벌 업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50여개 국내 중소업체들도 활발한 마케팅을 벌였다. 디오스텍 등 19개사는 한국전자산업진흥회(KEA)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지원을 받아 한국관에 참여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휴맥스, 코원시스템즈 등 중견업체들은 전시홀 곳곳에 독립 전시장을 마련했다. 한국관 참가 업체들은 주로 중저가 엘시디 티브이, 내비게이션, 블루투스(근거리 무선통신) 제품,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 등 틈새 시장형 기기들을 내놨다. 디지털 라디오방송 기기를 내놓은 오라콤의 전시장 직원은 “지난해 상담했던 유럽 바이어와 이번에 적잖은 규모의 계약을 했다”고 자랑했다.
틈새 기기 내놓고 활발한 마케팅 벌여
한국관 위치 안좋아 고전…계약건수 줄듯 한국관은 지난해 16개 업체가 참가해 3800만달러의 계약 실적을 올렸다. 전자산업진흥회 장일주 과장은 “올해는 업체 수는 조금 늘었지만 실적은 지난해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10여개 엘시디 티브이 제조업체들은 패널 공급난으로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상당히 고전했다. 주로 오이엠(OEM) 방식인데 바이어들의 조건까지 까다로워져 많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내 중소업체들의 국외 전시회 마케팅 여건은 여전히 험난하다. 한국관은 올해도 맨 끝 전시동 지하 1층에 위치해 일반 관람객들은 찾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반면 중국업체들은 국가 전시동 2동 중 1동을 거의 싹쓸이했고, 홍콩, 대만업체의 공동관은 우리보다 규모가 커졌다. 손수득 코트라(KOTRA) 함부르크 무역관장은 “국제 전시회는 당장의 계약이나 실익보다는 4~5년 동안 꾸준히 참가해 바이어들로부터 일종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매년 참가업체의 얼굴이 70% 이상 바뀐다”며 “글로벌 플레이어인 삼성전자·엘지전자 때문에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은 많은 편인데, 정작 우리 기업들은 독자적인 국외 시장 개척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베를린/글·사진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독자 기술…이제와서 장비 안사가면 어쩌라고” 엘지계열사 ‘실트론’
“공동 기술…3자판매 금지 저쪽이 먼저 어겨” 게다가 협약식 체결 직전 실트론은 그로워의 설계도면과 캐드(CAD) 파일까지 요구해 넘겨받았다. 지난해 중반 이후 실트론은 다른 중소업체로부터 그로워를 공급받고 있는 상태다. 중소기업인 나라테크는 세계에서 4번째로 12인치 잉곳(웨이퍼의 원료)을 만드는 그로워를 독자개발해 신기술 인증,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등 각종 화려한 수상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요업체인 실트론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실트론의 경영진단팀 이경화 부장은 “우리와 계약관계를 맺었던 일본업체의 도면을 넘기고 우리 직원들을 상주시키며 공동기술개발을 한 것”이라며 “설계도면을 제출 받았던 건 틀린 부분 지적을 위한 ‘기술지도’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나라테크가 먼저 제3자 판매금지를 어기고 지난해 이 첨단기술을 미국업체에까지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이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것도 독자기술이 아니라 “국산장비화에 성공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실트론 쪽은 덧붙였다. 이에 대해 엄상융 나라테크 부사장은 “우리가 받은 기술지도라곤 일본업체의 사용설명서를 받은 게 전부”라고 맞서고 있다. 지난해 실트론이 나라테크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 맞서, 나라테크는 지난 3일 실트론을 상대로 3천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과 형사고소를 제기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하도급거래 혐의로 제소한 상태다. 이 소송은 자본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소송비용 납부를 유예시켜주는 ‘소송구제제도’를 이용한 첫 사례라, 앞으로 비슷한 이유로 중소기업의 대기업에 대한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죽이기인지, 공동개발과 판매금지를 어기고 중소기업이 첨단기술을 국외에 유출한 것인지, 앞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다툼’은 법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국내 중소기업들이 영상음향기기전시회(IFA)의 한국관에 독립 부스들을 차려 마케팅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관 위치 안좋아 고전…계약건수 줄듯 한국관은 지난해 16개 업체가 참가해 3800만달러의 계약 실적을 올렸다. 전자산업진흥회 장일주 과장은 “올해는 업체 수는 조금 늘었지만 실적은 지난해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10여개 엘시디 티브이 제조업체들은 패널 공급난으로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상당히 고전했다. 주로 오이엠(OEM) 방식인데 바이어들의 조건까지 까다로워져 많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내 중소업체들의 국외 전시회 마케팅 여건은 여전히 험난하다. 한국관은 올해도 맨 끝 전시동 지하 1층에 위치해 일반 관람객들은 찾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반면 중국업체들은 국가 전시동 2동 중 1동을 거의 싹쓸이했고, 홍콩, 대만업체의 공동관은 우리보다 규모가 커졌다. 손수득 코트라(KOTRA) 함부르크 무역관장은 “국제 전시회는 당장의 계약이나 실익보다는 4~5년 동안 꾸준히 참가해 바이어들로부터 일종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매년 참가업체의 얼굴이 70% 이상 바뀐다”며 “글로벌 플레이어인 삼성전자·엘지전자 때문에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은 많은 편인데, 정작 우리 기업들은 독자적인 국외 시장 개척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베를린/글·사진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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