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현지시각)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중개인들이 분주히 주문을 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날 기준금리를 연 4.75%에서 4.5%로 0.25%포인트 인하하자 국제 유가가 큰폭으로 뛰었다.
악달러에 투기금 몰려 유가상승
수급보다 금융시장이 큰 변수로
연기금까지 시세차익 노려 가세
“기름이란 옛이름은 버렸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가 31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자, 잠시 주춤했던 국제 유가 상승세에 다시 불이 붙었다. 달러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투자 차익을 노린 막대한 투자 자금이 석유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의 흐름이 이전과 달리 석유의 수요·공급이나 지정학적 정세보다는 국제 금융시장의 움직임에 더 크게 좌우되고 있다. 그만큼 석유 시장의 변동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석유가 이제 더이상 ‘원자재’가 아니라 ’금융상품’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 유가는 ‘디커플링’ 중=석유 시장을 들락거리는 국제 금융자본의 덩치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매주 발표하는 통계를 보면, 지난달 23일 현재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체결된 원유 선물 계약 가운데 ‘비상업적(Non-commercial)’ 참여자의 계약 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18.3%나 됐다. 비상업적 참여자란 석유 업계 이외의 투자 자금을 말하는 것으로, 대부분 시세 차익을 노린 금융자본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난해 말(12월26일)의 12.6%와 견줘 급증했다. 특히 연준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한 지난 9월18일 전후의 거래량을 살펴 보면, 석유 시장이 국제 투자자금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상업적 참여자는 9월11일 기준으로 모두 23만1243건(1건=1000배럴)의 선물 계약을 체결해, 전체 계약 건수의 15.7%를 차지했다. 하지만, 9월18일 그 비중은 16.9%(23만8336건)로 단숨에 커졌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팀장은 “유가가 수급 동향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에서 점점 벗어나는 ‘디커플링’이 진행되고 있다”며 “석유의 금융상품 성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의 국제 유가 전문가 회의에 참여하는 한 민간 전문가는 “돌이켜보니, 그동안 유가를 전망하면서 금융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이제는 유가를 바라보는 마인드를 바꿔야 할 판”이라고 털어놓았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31일 보고서에서 “유가가 계속 상승해 몇주안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이 정점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차익을 실현하라”고 주장했다. ‘석유=금융 투자 상품’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 연기금까지 석유 투자에 나서=이처럼 석유 시장이 금융시장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게 된 데는 세계적으로 과잉 유동성 상태가 오래 지속된데다가 기존 금융상품의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의 연구기관인 유니크레디트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파생상품까지를 모두 합한 세계 유동성 규모는 세계 총생산(GDP)의 964%에 이른다. 실물 부문의 열 배에 가까운 돈이 금융시장을 떠돌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국제 유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시점을 대체로 2002년 무렵으로 본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연구분석실 연구원은 “닷컴 거품 붕괴 이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 자금들이 이 때부터 속속 석유 등 원자재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보수적인 투자 성향을 지닌 연기금마저도 이 쪽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 시장이 갈수록 금융시장의 논리에 휘둘리는 경향이 더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금융상품적 성격이 유가 상승의 폭을 크게 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투기자본도 기본적으로 수급 상황이 타이트할 때 들어오는 거지, 수급이 안정되어 있는데 들어오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제 유가가 금융시장과 밀접하게 움직이면서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보니 관련 시장에 대한 감독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 의회는 지난해 헤지펀드의 하나인 아마란스펀드가 천연가스 시장에 투자했다 파산한 것을 계기로, 원자재 관련 투자에 대한 감독당국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수급보다 금융시장이 큰 변수로
연기금까지 시세차익 노려 가세
“기름이란 옛이름은 버렸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가 31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자, 잠시 주춤했던 국제 유가 상승세에 다시 불이 붙었다. 달러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투자 차익을 노린 막대한 투자 자금이 석유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의 흐름이 이전과 달리 석유의 수요·공급이나 지정학적 정세보다는 국제 금융시장의 움직임에 더 크게 좌우되고 있다. 그만큼 석유 시장의 변동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석유가 이제 더이상 ‘원자재’가 아니라 ’금융상품’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 유가는 ‘디커플링’ 중=석유 시장을 들락거리는 국제 금융자본의 덩치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매주 발표하는 통계를 보면, 지난달 23일 현재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체결된 원유 선물 계약 가운데 ‘비상업적(Non-commercial)’ 참여자의 계약 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18.3%나 됐다. 비상업적 참여자란 석유 업계 이외의 투자 자금을 말하는 것으로, 대부분 시세 차익을 노린 금융자본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난해 말(12월26일)의 12.6%와 견줘 급증했다. 특히 연준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한 지난 9월18일 전후의 거래량을 살펴 보면, 석유 시장이 국제 투자자금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상업적 참여자는 9월11일 기준으로 모두 23만1243건(1건=1000배럴)의 선물 계약을 체결해, 전체 계약 건수의 15.7%를 차지했다. 하지만, 9월18일 그 비중은 16.9%(23만8336건)로 단숨에 커졌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팀장은 “유가가 수급 동향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에서 점점 벗어나는 ‘디커플링’이 진행되고 있다”며 “석유의 금융상품 성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의 국제 유가 전문가 회의에 참여하는 한 민간 전문가는 “돌이켜보니, 그동안 유가를 전망하면서 금융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이제는 유가를 바라보는 마인드를 바꿔야 할 판”이라고 털어놓았다.
올해 달러-유로 환율 추이 / 국제 유가 추이
■ 연기금까지 석유 투자에 나서=이처럼 석유 시장이 금융시장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게 된 데는 세계적으로 과잉 유동성 상태가 오래 지속된데다가 기존 금융상품의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의 연구기관인 유니크레디트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파생상품까지를 모두 합한 세계 유동성 규모는 세계 총생산(GDP)의 964%에 이른다. 실물 부문의 열 배에 가까운 돈이 금융시장을 떠돌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국제 유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시점을 대체로 2002년 무렵으로 본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연구분석실 연구원은 “닷컴 거품 붕괴 이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 자금들이 이 때부터 속속 석유 등 원자재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보수적인 투자 성향을 지닌 연기금마저도 이 쪽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 시장이 갈수록 금융시장의 논리에 휘둘리는 경향이 더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은 “금융상품적 성격이 유가 상승의 폭을 크게 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투기자본도 기본적으로 수급 상황이 타이트할 때 들어오는 거지, 수급이 안정되어 있는데 들어오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제 유가가 금융시장과 밀접하게 움직이면서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보니 관련 시장에 대한 감독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 의회는 지난해 헤지펀드의 하나인 아마란스펀드가 천연가스 시장에 투자했다 파산한 것을 계기로, 원자재 관련 투자에 대한 감독당국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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