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의장
“월가에 또 굴복” “장기 세계경제 무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가 31일 결정한 기준금리 인하 폭은 0.25%포인트로 6주 전의 0.5%포인트보다 적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 ‘월가에 대한 굴복’ 등 연준과 벤 버냉키 의장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지난번보다 약하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1일 ‘월가에 맞설 때’라는 칼럼에서 연준이 이기적 동기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월가에 또다시 양보했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금리 인하는 투자가들과 은행가들에게 연준이 신용 경색 저지에 매우 열중하면서 거품을 다시 키우고, 어쨌든 파티가 계속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키워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증시나 은행권의 이익 감소나 신용 경색에 지나치게 무게를 둬, 목소리를 키우면 요구를 들어준다는 잘못된 관행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 칼럼은 “버냉키 의장은 월가의 요구에 맞설 능력이 있는지, 금융위기를 부추겼다는 부당한 비난이 두려워 대형 은행과 투자자들의 단기 이익에 신경쓰면서 세계경제의 장기적 이익을 무시할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월가는 금리가 내려가지 않으면 당장 큰 일이 날듯 떠들지만 지켜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달러 가치 하락이나 유가 상승이 연준이 매달려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이날 ‘연준은 스스로 만든 요구에 굴복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같은 지적을 내놨다. 사설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를 고려할 때 금리와 달러 가치의 연쇄 추락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해 연준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연준의 금리 결정은 모두 만장일치로 이뤄졌지만 31일에는 위원 10명 가운데 1명이 반대했다. 연준 안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준의 재할인율 인하에는 12개 연방은행 가운데 6곳이 반대하기도 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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