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극화를 넘어…동반성장의 길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한 참여정부가 출범 3년째를 맞았으나 양극화 현상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제조업과 서비스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상하위 계층의 틈이 커지는 현상을 그대로 놔두면 우리 사회는 선진국 진입은커녕 심각한 분열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대기업 위주 성장정책에서 벗어나 사회 각 부문이 골고루 성장 혜택을 누릴 길을 찾아야 한다. 선진국 중에는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동반성장을 이룬 사례가 적지 않다. 매주 한차례씩 선진 모범사례를 국외 취재를 통해 살피고, 국내에서도 동반성장의 길을 열어가는 희망의 씨앗을 찾아내 소개한다. 제1부 해외서 배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지역경제 살리기
△미국 위스콘신 노동혁신
△일본 도요타 중소기업 협력체제
△독일 ‘아우토 5000’ 일자리 창출
△프랑스 사회적 일자리 만들기
△스웨덴 혁신클러스터 시스타
△미국 오하이오 종업원 자본참여
△스웨덴 사회연대임금
△미국 지역재투자법
△일본 도요타 평생학습체제
제2부 국내선 어떻게… 노-사-시 공동출자 부품·유통업체 키워
6년간 2만3000곳 일자리 새로 창출
“울산 현대차·수원 삼성전자도 본받을만” 베를린 서쪽 고속철도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볼프스부르크. 인구 30여만명의 도시 전체가 세계 4위 자동차 생산업체인 폴크스바겐의 수십개 공장들로 가득 차 있는 독일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다. 폴크스바겐이 볼프스부르크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1990년대 후반 볼프스부르크시의 일자리 중에서 폴크스바겐과 직접 관련된 것만 60%에 이르렀다. 90년 동서독 통일을 계기로 일었던 특수의 거품이 빠지면서 폴크스바겐은 93년부터 자동차 생산량이 25%나 줄어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볼프스부르크시도 당연히 함께 위기에 빠졌다. 일자리가 2만자리나 줄고, 92년 9%였던 실업률이 97년에는 17.2%로 치솟았다. 1938년 창사 이래 줄곧 볼프스부르크를 지켜온 폴크스바겐에서도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외로 공장을 이전하자는 소리가 나오면서 위기의식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 폴크스바겐 노사는 94년 고용안정협약을 맺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전격적으로 합의한다. 기업 경쟁력 유지와 고용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사가 손잡은 것이다. 문제는 볼프스부르크시였다. 중소 부품협력 업체와 지역경제는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폴크스바겐 노사의 결단이 뒤따른다. 회사의 담장을 뛰어넘어 지역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지역경제 살리기에 직접 나서는 것도 특이하지만, 노조가 이를 주도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폴크스바겐 노·사와 시당국은 98년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3자 협력모델을 만들자는 데 극적으로 합의한다. 그 합의의 산물이 바로 ‘아우토비전 프로젝트’다. 아우토비전의 목표는 2003년까지 지역 실업률을 절반으로 낮추는 것이다. 또 지역경제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활성화하고, 폴크스바겐 의존 일변도의 지역경제를 다변화하는 것이다. 폴크스바겐 노사와 시당국은 ‘아우토비전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99년 함께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이상호 박사는 “민관이 파트너십을 이뤄 지역경제 살리기에 나선 첫 사례”라며 “지역에 전략산업을 집적해서 근접성과 네트워크 구성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바탕으로 지역경제의 혁신을 이루고, 궁극적으로는 폴크스바겐도 혜택을 얻는 상생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아우토비전 프로젝트가 지난해 말까지 6년 동안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볼프스부르크사’는 이 기간에 100여 기업을 새로 유치하고, 200여 기업의 창업을 지원함으로써 7500여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했다. 시 전체로 새로 생긴 일자리는 2만3000개에 이른다. 실업률은 8%로 급격히 떨어졌다. 독일 전체 실업률이 11%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볼프스부르크사의 클라우스 디르케스 이사회 대변인은 “99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15년 이후를 내다보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순조로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했다. 자동차 부품제조, 판매, 유통, 관광, 컨설팅 등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동차 산업의 전후방 연관효과와 시너지를 극대화한 것이다. 폴크스바겐 노사와 볼프스부르크시가 3자 협력으로 지역경제 살리기에 나선 데는 폴크스바겐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폴크스바겐은 설립 때부터 지역사회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갖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폴크스바겐 노사는 94년부터 볼프스부르크가 있는 독일 북서부 니더작센주의 발전을 위한 지역 노·사·정·학 협력사업인 ‘레존’(RESON)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베른트 피셰츠리더 대표이사는 “폴크스바겐의 경제적 성과는 그동안 폴크스바겐이 수행해온 ‘사회적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회사 내 노동자 대변 조직인 총사업장평의회의 클라우스 폴케르트 의장도 “지속 가능한 발전은 폴크스바겐의 원칙이자 표상”이라고 말한다. 폴크스바겐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책임은 회사나 사용자만의 몫이 아니다. 노동자도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다. 폴케르트 의장은 “협력적 노사관계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함께 참여하는 (독일식) ‘공동결정 방식’은 폴크스바겐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추동하는 핵심동력”이라고 설명한다. 볼프스부르크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경영감독회도 노·사·정 대표로 구성돼 있다. 이상호 박사는 “아우토비전 계획은 지역사회의 중심기업이 지역산업 및 경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며 “울산의 현대자동차나 수원의 삼성 같은 대기업의 노사가 기업 차원에 머물지 말고 지역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지역사회 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해 힘쓰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볼프스부르크/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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