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체 담합에 대한 과징금 부과 추이
공정위, SK에너지 등 8개사에 127억 과징금
지난해이어 4번째 적발…‘미온적 대처’ 지적
지난해이어 4번째 적발…‘미온적 대처’ 지적
에스케이·지에스·삼성·롯데·대림·동부·엘지 등 재벌 계열 8개 석유화학업체들이 제품가격을 서로 짜고서 정하는 담합을 한 사실이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2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유화업체들에 대한 담합 제재는 지난해 이후에만 네번째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유화업체들의 상습적인 담합에 대해 관련 매출액의 최대 5~10%까지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을 0.9%만 물렸다.
공정위는 22일 에스케이에너지·지에스칼텍스·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호남석유화학·대림코퍼레이션·동부하이텍·씨텍(옛 현대석유화학) 등 8개 업체가 지난 2000~2005년에 스티렌모노머(SM), 톨루엔(TL), 모노에틸렌글리콜(MEG) 등 6개 유화제품 가격을 담합한 것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 업체들은 품목별로 영업실무자 모임을 열고 판매 기준가격을 결정하는 ‘가격공식’에 합의한 뒤 매달 한두번씩 만나 판매가격을 결정했다. 관련 유화제품들은 정화조, 욕조, 단추, 페인트, 접착제, 잉크, 농약, 염료, 폴리에스터 섬유, 부동액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소비재들을 만드는 데 쓰인다. 관련 유화제품의 국내시장 규모는 연간 1조8천억원에 이른다. 업체들은 이들 시장에서 점유율이 최대 95%에 이르는 막강한 힘을 이용해, 4~5년의 담합기간 동안 가격을 최대 160%나 올렸다.
지난해 이후 유화업체들의 담합이 적발된 사건은 △호남석유화학 등 10개 업체의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등 담합(2007년 2월) △금호석유화학·씨텍의 합성고무(SBR) 담합(2007년 2월) △한화석유화학 등 7개 업체의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등 담합(2007년 12월)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다. 유화업체들에 부과된 과징금은 1771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공정위는 유화업체들의 상습적인 담합행위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해, 시장경제 ‘제1의 공적’으로 꼽히는 담합을 근절하겠다는 정책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관련 과징금 부과 상한액은 관련 매출액의 10%이고, 2005년 4월 이전에는 5%였지만, 이번 사건의 부과율은 0.9%에 그친다. 공정위는 또 그동안 공개해온 담합행위로 인한 피해액과 담합기간 중 가격 상승률 등 세부자료도 내놓지 않았다. 또 지난해에는 대다수 담합업체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공정위의 이런 대응은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따라 사전규제를 대폭 완화하되, 시장감시와 제재는 강화하겠다는 정책방향과 어긋난다. 백용호 공정위원장은 20일 아시아유럽미래학회 연설에서도 “공정위가 감시와 재재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 시장 친화적 정책에서 후퇴하는 것 아니냐, 신정부의 큰 정책 흐름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지만 (담합 등) 반칙행위를 제재하는 것은 성공적인 시장의 작동을 위한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었다. 공정위의 김정기 제조카르텔과장은 “이번 사건은 유화업체들이 2005년 4월 담합조사를 받기 시작된 뒤 1년 정도 지나서 뒤늦게 잘못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새로이 드러난 사안이어서, 과징금을 일부 깎아줬다”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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