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첫번째)이 24일 오전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경제5단체장과 조찬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윤증현 장관과 간담회서 “해고조건 완화” 요구
“해고 자제 등 약속에 정면 위배” 노동계 반발
“해고 자제 등 약속에 정면 위배” 노동계 반발
경제5단체장들이 정부의 고용·투자 확대 요청에 대해 경영이 어려울 때 좀더 자유롭게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현행 노동관련 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힘들다며 난색을 보였다. 경제단체들의 이런 반응은 노·사·민·정이 참여한 비상대책회의가 지난 23일 발표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합의문’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한겨레> 24일치 1·10면 참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오전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 이수영 한국경총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5단체장과 함께 한 조찬간담회에서 기업들이 고용과 투자를 확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윤 장관은 “고용과 투자는 결국 서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어가려면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경영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나 경제5단체장들은 “퇴출구조 없는 무조건적인 신규 채용확대는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감이 크다”며 난색을 보였다. 전경련 관계자는 “근로자 해고조건 완화, 비정규직 활용 확대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런 발언은 경제5단체 중에서 노사문제를 맡고 있는 한국경총의 이수영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에서는 경제5단체장의 발언이 노·사·민·정 합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경제5단체는 하루 전에 발표한 한국노총, 시민사회단체, 정부와 함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합의’를 통해 “노동계가 임금 동결·반납·절감에 힘쓰는 것에 맞춰 (기업들도)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을 자제하고, 기업의 잉여금 등 보유 자금을 활용해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비상대책회의는 또 이번 합의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주도적 사회적 합의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손종흥 사무처장은 “경영계가 국민에게 약속을 하고서 불과 하룻만에 그런 태도를 보이면 안된다”며 “경영계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노동계는 비상대책회의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사·민·정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의 우문숙 홍보실장은 “노·사·민·정 합의라는 것이 처음부터 경영계가 노동자들의 임금도 깎으면서 해고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용이었다”며 “경영계의 발언으로 원래 의도가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합의가 사실상 노력하겠다는 선언적 수준에 그쳐 실효성에 의문이 들었다”며 “합의가 이행되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경제5단체장들과 같은 발언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황예랑 기자 jskw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