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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대공황기 세계를 일주한 경제학자

등록 2009-03-08 17:23수정 2009-03-08 21:55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1933년은 세계 대공황의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해다. 1929년에 발발한 세계 대공황은 4년이 지나도록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미국의 후버 대통령은 증세와 정부지출 감축이라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어리석은 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경기는 계속 나빠져서 1933년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25%, 즉 노동자 넷 중 한사람이 실업자라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1933년 3월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고, 뉴딜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2월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있던 경제학자 이순탁은 세계일주에 나섰다. 그는 열 달 동안 세계를 돌고 온 뒤 <최근 세계일주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 출간, 1997년 학민사 재출간) 첫 여행지 일본으로 가는 관부연락선은 일제의 수탈로 고향을 떠나 일본에 품 팔러 가는 조선인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를 보면서 경제학적 분석과 더불어 인간적 비애에 젖는다. 모교인 교토대학 경제학부를 찾아가서 존경하던 스승인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가 사상 문제로 감옥에 갇힌 것을 알게 되고, 스승에게 면회를 가려고 하니 동창생이 위험하다며 극구 말린다. 이후 그는 홍콩·싱가포르·스리랑카를 지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서 이탈리아·프랑스·독일·영국 등 유럽을 돌아보고, 미국을 끝으로 다시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돌아왔다.

이 세계일주기는 당시 기승을 부리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 히틀러의 파시스트 경제정책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고, 히틀러의 사상탄압, 특히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버금가는 사상서적 불태우기에 분노하고 있다. 그는 독일을 돌아보며 이때 벌써 “제2차 구주대전(세계대전)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보인다. 런던에서는 거리에 거지와 실업자가 넘치는 것을 개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의 물결에 놀라면서 당시 막 시작했던 미국 국가부흥청(NRA)의 뉴딜 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순탁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그의 스승 가와카미 하지메가 1915년에 출간했던 유럽 여행기 <조국을 돌아보며>를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가와카미는 영국의 작은 상점에 진열된 일제 장난감과 일장기를 보고 눈물을 흘릴 만큼 애국자였는데, 그는 이후 사상적으로 좌선회하여 일본의 대표적 좌파 경제학자가 되었고, 이순탁 교수가 찾아갔던 1933년에는 투옥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제자 이순탁은 1938년 소위 ‘연희전문학교 학내 적화사건’의 주모자로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2년 3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 이승만 정부에서 초대 기획처장을 지낸 뒤 한국전쟁의 와중에 납북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넘은 사제간의 기구한 운명을 보면서 지식인의 양심을 생각하게 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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