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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일자리 나누기와 임금 삭감

등록 2009-03-22 19:24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실업자가 곧 100만명을 돌파하리라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취업난이 심각하니 올해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불운한 사람들이다. 이런 와중에 일자리를 유지해보려는 몸부림이 나타나고 있으니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라는 것이 그것이다. 공기업, 금융기관, 대기업에서 대졸 초임을 삭감하는 대신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인턴사원을 더 채용하는 방식이다. 정부도 이 방식을 권장하고 나섬으로써 일자리 나누기는 일종의 유행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과연 이 방식은 바람직한가? 또 성공할 수 있을까?

원래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란 일하고 있는 사람의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일하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 개인이 전보다는 늘어난 여가 시간을 가정생활, 취미활동, 혹은 인적자본 투자에 쓸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노동 쪽에 치우쳤던 시간의 배분을 바꾸어 개인생활을 좀더 풍부하게 하는 이점이 있다. 또한 일자리 나누기는 불황기에 실업을 줄이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1932년 미국의 후버 대통령은 ‘일자리 나누기 위원회’를 만들어 1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는데, 시어스(Sears), 지엠(GM) 등 3500개 기업이 이 운동에 호응했다. 1990년대 초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주당 노동시간을 36시간에서 29시간으로 줄이고 임금을 10% 삭감하여 일자리를 지켜내기도 했다.

이번 한국형 일자리 나누기는 임금 삭감을 수반하고 있으며, 그것도 오로지 신입사원들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는 성질이 다르다. 먼저 임금 삭감이 고용 유지와 불황 타개에 과연 도움이 되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문제는 바로 케인스가 그의 명저 <일반이론>에서 깊이 파고들었던 유명한 문제다. 케인스는 당시 주류경제학인 고전파 경제학이 불황 타개책으로 임금 삭감을 내세우는 데 대해 그 논리적 허점을 낱낱이 지적하였다. 임금 삭감은 소비·투자·금리 등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데, 온갖 가능성을 검토한 뒤 케인스가 내린 결론은 임금 삭감은 불황의 해결책이 못 되고, 오히려 임금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케인스도 <일반이론>에서 임금 삭감에 따르는 사회정의의 문제를 말하고 있지만 한국형 일자리 나누기는 심각한 불공평을 내포하고 있어서 더욱 문제가 된다. 기존 사원은 그대로 두고, 유독 올해 신입사원만 연봉으로 1천만원이나 적게 받는다면 이는 선후배 사이에 심한 불공평이 되므로 두고두고 부작용이 클 것이며, 회사조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이론에서 말하는 ‘내부자/외부자 모형’으로 설명한다면 이것은 내부자들의 공모에 의한 외부자 차별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국형 일자리 나누기는 내용에 문제가 많고, 성공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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