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곳 정권관련자 새로 뽑아…삼성·SK 등은 ‘보험용’
공적자금 투입기업 특히 많아…“사외이사 취지 실종”
공적자금 투입기업 특히 많아…“사외이사 취지 실종”
대기업들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를 새로 뽑으면서 이명박 정권 출범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엠비(MB)맨’, 여당 관련 인사, 현 정부의 고위직을 지냈거나 후보 물망에 올랐던 인사, 정부 주관 위원회 멤버들을 대거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가 22일 기업지배구조 전문연구기관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도움으로 상장 재벌 계열사, 상장 공기업 및 민영화기업, 금융지주회사, 상장 공적자금 투입회사 중 올해 주총에서 사외이사 변동이 있었던 89개사를 조사한 결과, 19개사에서 21명(중복 포함)이 엠비 정권과의 직간접적인 연관성으로 논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해당 기업들의 전체 사외이사 변동자 147명 가운데 14%를 차지한다.
정부·여당의 입김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공적자금 투입기업, 공기업,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기업에서는‘엠비 낙하산’이 활짝 펼쳐졌다. 대우조선해양은 김영 전 부산문화방송 사장을 영입했다. 김씨는 대선캠프에서 특보로 활동했고, 최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여당 쪽 위원에 임명됐다. 한전 계열사인 한전케이피에스는 정용대 한나라당 원외당원협의회(지구당) 위원장을 뽑았다. 정씨는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우리금융지주는 이두희 고려대 경영대 교수를 영입했다. 이 교수는 투기 의혹으로 물러난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남편이다.
포스코는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김병기 전 재경부 기획관리실장을 영입했다. 유 교수는 대선캠프의 정책자문단에서 활동했고, 김씨도 대선캠프 경제정책자문단을 거쳐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케이티는 이춘호 인하대 교수와 허증수 경북대 교수를 영입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 초대 여성부 장관 후보였으나 투기 의혹으로 낙마했고, 허 교수도 대선캠프 선거대책위원회를 거쳐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위 팀장으로 활동하다가 향응접대 의혹으로 물러났다. 케이티앤지는 김원용 이대 교수를 선임했다. 김 교수는 대선캠프 전략홍보기획조정회의에서 활약했다. 이들의 경우 정부 압력으로 케이티, 포스코의 최고경영자가 잇따라 교체될 때부터 ‘전리품 챙기기’가 예상됐다는 시각이 많다.
삼성·에스케이·엘지·현대기아차·효성 등 재벌들의 사외이사 영입은 일종의 보험용으로 해석된다. 삼성의 제일모직은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를 영입했다. 강 교수는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간위원이고, 지난해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를 맡았다. 호텔신라는 한국방송 아나운서 출신인 이병혜 명지대 교수를 선임했다. 이 교수는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여당 쪽 위원이다. 에스케이에너지는 한나라당 원외 위원장인 이훈규 변호사를 뽑았다.
현대제철은 오정석 서울대 경영대 교수를 선임했다. 오 교수는 이 대통령의 친형으로 최대 실세로 통하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사위이자, 오명 건국대 총장의 아들이다. 기아차도 지난해 주총에서 이두희 고대 교수를 선임했다. 엘지전자는 김상희 전 법무차관을 영입했다. 김 변호사는 ‘이명박 특검법’에 대한 헌법소원 소송 대리인을 맡을 정도로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고, 법무부 장관 물망에도 올랐다. 김 변호사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총수인 ㈜효성의 사외이사로도 선임됐다.
신세계는 강대형 법무법인 케이씨엘 고문을, 한진해운은 임희택 케이씨엘 변호사를 각각 뽑았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케이씨엘이 현 정권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는 로펌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한다. 케이씨엘의 대표변호사인 유지담 전 대법관은 이 대통령이 속한 고대 61학번 모임인 ‘61회’의 핵심 멤버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정권에 대한 일종의 성의 표시고, 만일에 대비한 인맥 구축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린 기업도 눈에 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직접 언급했던 ㈜두산은 신희택 서울대 법대 교수를 영입했다. 신 교수는 김앤장 출신으로, 참여정부 때부터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은 김기춘 전 한나라당 의원을 선임했다.
해당기업들은 사외이사 선임의 정치적 연관성을 부인한다. 하지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김선웅 소장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데 필요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결여한 사외이사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방만경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취지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해서, 소수주주들 주도로 독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인사를 영입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해당기업들은 사외이사 선임의 정치적 연관성을 부인한다. 하지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김선웅 소장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데 필요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결여한 사외이사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방만경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취지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해서, 소수주주들 주도로 독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인사를 영입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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