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지난달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이 “달러화 대신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을 새 기축통화로 사용하자”라고 제안한 뒤 기축통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공업국들이 동조하고 나섰고, 국제통화기금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도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대표로 하는 유엔(UN) 금융·경제개혁 자문단은 미국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 문제에 세계 지도자들이 합의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지난달 26일 유엔 총회에 제출했다. 세계의 기축통화 달러가 세계적 금융위기 와중에서 정면으로 도전받고 있다.
달러 기축통화의 연원은 2차대전 시기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에 전후 국제통화질서 문제가 대두했고,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영국의 케인스와 미국의 재무차관 화이트에게 숙제가 주어졌다. 다음해 두 사람이 숙제를 제출했다. 1943년 4월에 나온 케인스 안은 영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으로서 새 국제통화 방코르(Bancor)의 발행, 충분한 국제유동성 공급, 무역수지 적자국과 흑자국 공동 조정의무 부과가 뼈대였다. 반면 1943년 7월에 나온 화이트 안은 미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화, 고정환율제 채택, 무역수지 적자국에 불균형 해소 의무 부과가 핵심이었다. 양국의 힘겨루기는 결국 1944년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인 44개국 회의에서 미국의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화이트 안이 채택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렇게 해서 성립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2차대전 후 그럭저럭 굴러갔으나 오래지 않아 문제점이 속출했다. 다른 나라는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긴축정책, 평가절하 등을 통해 고통을 감수하면서 불균형을 해소하는 의무가 주어졌으나 기축통화국 미국만은 예외였다. 미국은 만성적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내면서도 아무런 조정 책임이 없었고, 계속해서 달러만 찍어내 공급해주면 됐다. 이를 가리켜 다른 나라들은 “눈물 없는 적자”(deficit without tears)라고 부르며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노름할 때 집주인이 바둑돌을 돈으로 치자고 하면서 자꾸 바둑돌을 가져와 쓰는 것과 비슷하다.
한 나라의 통화를 국제통화로 쓰면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미국의 무역수지가 흑자가 되면 달러가 강해지고, 달러의 신인도는 높아지지만 다른 나라들은 달러 부족에 시달리고, 반대로 미국의 무역수지가 적자가 되면 달러가 다른 나라에 공급되어 유동성 문제는 해결되지만 그 대신 달러의 가치 하락, 신인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진퇴양난이다. 이를 처음 지적한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서 ‘트리핀의 딜레마’라고 한다. 과연 트리핀의 딜레마가 없는 방코르 같은 새 국제통화가 출현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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