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일본에서 ‘격차사회’ 논쟁이 뜨겁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로 평가받던 나라가 일본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일본에는 ‘1억 총중류’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는 1억 일본인이 모두 중류에 속한다는 말인데, 바꾸어 말하면 일본에는 상류도 없고, 하류도 없고, 국민 모두가 스스로 중류라고 생각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랬던 일본에서 지금은 여론조사마다 국민의 70~80%가 격차확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1976년에 경제학자 맬컴 소여(Malcolm Sawyer)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국의 소득분배를 비교연구하여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프랑스가 불평등 1위로 나타나면서 당시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이 직접 오이시디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에 나온 많은 비교연구에서는 프랑스가 그렇게 불평등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 불명예를 씻을 수 있었다. 당시 소여의 연구에서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도 비교적 평등한 나라라는 결과가 나와서 일본은 북유럽과 더불어 국제적으로 평등국가라는 좋은 인상을 얻게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도 불평등이 큰 나라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일본에서는 지금 ‘격차사회’ 논쟁에 불이 붙었다.
증거를 보면 일본의 불평등은 지난 30년간 현저히 증가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지니계수는 이론적으로 0과 1 사이의 값을 취하는데, 그 값이 작을수록 평등하고 클수록 불평등하다. 현실적인 지니계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0.2에서 0.6 사이의 값을 취한다. 일본의 지니계수는 1972년 0.314에서 2002년 0.381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일본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미국, 영국 등 몇 나라의 뒤를 이어 불평등이 비교적 심한 나라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빈곤율은 미국, 아일랜드에 이어 3위이고 대도시에 노숙자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일본에서 불평등이 심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정부는 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한 착시 현상으로 해석하면서 애써 격차사회를 부정하려고 하지만 가난한 1인 고령가구의 증가 자체가 불평등 심화임을 감출 수 없다. 일본 자민당 정권이 추진한 시장만능주의적 구조개혁도 불평등 심화를 가져왔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몇 해 전 “격차는 어느 사회에나 있고,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을 시기한다든가 능력 있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풍조를 삼가지 않으면 사회는 발전하지 않는다”라며 역공을 가했는데, 이런 철학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해서 격차사회의 문제를 더 키웠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일본이 오랫동안 성장만을 부르짖으며 복지를 무시한 데 있다. 이 모든 점에서 일본과 흡사한 한국은 지극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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