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악덕 사채업자의 농간에 빠져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한 딸을 죽이고 아버지가 자살한 사건이 2008년 11월 말에 있었다. 대학생 딸이 친구와 쇼핑몰을 하려고 2007년 봄에 빌린 300만원이 1년 반 만에 6700만원으로 불어났다. 교묘한 계약에 따라 눈더미처럼 불어나는 빚을 갚아보려고 사채업자의 강요에 따라 급기야 룸살롱으로, 성매매로 내몰렸던 딸과 그 아버지의 운명이 너무나 측은하다. 고소도 없었는데 경찰이 신문을 읽고 스스로 넉 달 동안 열심히 수사를 해서 최근 사채업자와 룸살롱 주인을 찾아내 구속하는 개가를 올렸다. “죽은 부녀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좋겠다”는 경찰의 말이 감동을 준다.
고리대의 횡포는 역사가 오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은 돈을 낳을 수 없는 불임성(不姙性)이 있으므로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세 신학자들도 이자를 받는 것은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기어코 이자를 받아야 한다면 어느 수준으로 받는 게 정의로운가 하는 ‘공정 이자’ 논쟁은 신학자들에게 중요한 토론 주제였다.
세계 이자율의 역사를 보면 예외적으로 이자율이 아주 높은 시기, 나라도 있었지만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근대에 이르기까지 이자율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시대와 장소가 천차만별이지만 신기하게도 대체로 연 10% 안팎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궁핍함을 이용해서 고리사채업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이들이 사람들 눈에 좋게 비쳤을 리 없다. 그래서 문학작품 중에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유대인 고리대업자 샤일록을 비방·풍자하는가 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살해 대상이 하필이면 전당포 노파다.
조선시대 농촌에는 장리(長利)라는 악명 높은 고리대가 있었다. 양식이 떨어지는 춘궁기에 쌀 한 말을 빌리면 가을에 수확해서 반 말을 얹어서 갚아야 했으니 금리가 반년 만에 50%이고, 1년으로 치면 100%나 되는 착취적인 고금리였다. 많은 농민이 장리 때문에 더욱 궁핍해졌고, 양반·지주들에게 담보로 잡혔던 땅마저 빼앗겨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해졌다. <성종실록>에 정창손이 “지금 재상 중에서 장리를 놓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 양반·지주들의 고리대 횡포가 만연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정부에서는 최고이자율을 연 30%로 묶는 이자제한법을 시행중이다. 그러나 법은 멀고 서민들에게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이자제한법이 있어서 원·명나라 때는 연 36%, 청나라에 와서는 24%로 제한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서민금융의 기회를 확대하는 보완적 조처 없이는 법만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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