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 종교, 사회, 법조 단체 대표들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이 끝난 뒤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이미 그룹 장악 가능한 지배주주 지위 확보
‘온실속 화초’ 벗어나 CEO 능력 발휘 과제로
‘온실속 화초’ 벗어나 CEO 능력 발휘 과제로
삼성의 앞날은
“지난 10여년 동안 발목을 잡아온 ‘경영권 승계 논란’에서 드디어 벗어나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대법원이 29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에 대해 무죄선고를 내린 직후 삼성 핵심 임원들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전경련도 “어려운 우리 경제의 활성화와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삼성은 1996년 이건희 전 회장의 자녀들인 이재용씨 오누이가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인수한 뒤, 13년 동안 경영권 불법승계 논란에 시달렸다. 삼성이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하면서도 사회적 존경을 받지 못한 데는 불법승계 논란도 큰 원인이 됐다.
삼성은 “아직 재판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며 조심하면서도, 내심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법적 장애물이 제거된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보인다. 주변에선 당장 올해는 아니더라도 경영권 승계 작업이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전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도 이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재용씨는 이미 그룹을 장악할 수 있는 지배주주 지위 확보와 지배구조 구축을 끝낸 상태다. 지난 94년 아버지한테서 약 60억원의 종잣돈을 증여받아 에버랜드·삼성전자 등의 주식을 헐값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다른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덩달아 보유주식 가치만 1조1천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에 대해 완전 면죄부를 받았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많다. 당장 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발행이 유죄 취지로 고법에 파기환송됐다. 이 전 회장은 이 사건으로 기소돼 있다. 또 경영권 승계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시각이 말끔히 씻겼다고 보기도 힘들다.
경영권 승계에는 다른 선결과제들도 놓여 있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대법원 선고가) 이재용씨 승계 문제와 삼성의 총체적 불법행위 및 소유지배구조 문제의 종착역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재용씨는 먼저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는 2001년 삼성전자 상무보를 맡은 지 9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룹의 보호 속에 ‘온실 속 화초’로 머물러 있다. 그도 이를 의식한 듯 삼성전자 사장을 먼저 맡아 능력을 보여주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한 해 매출이 120조원을 넘는 글로벌기업이다. 지분이 50%에 가까운 외국인 투자자들이 전직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씨를 선뜻 최고경영자로 받아들이는 위험을 감수할지는 미지수다.
그룹의 새 경영체제 구축도 큰 과제다. 이 전 회장은 전략기획실이라는 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을 통해 그룹을 지배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경영쇄신안 발표 이후 전략기획실은 형식상 해체된 상태다. 이재용씨는 지난 2월 부인과의 갑작스런 이혼으로 ‘깨끗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에 큰 흠집이 났다. 이 전 회장이 아들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도 계속 흘러나온다.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등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두 여동생과의 관계 정리도 변수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삼성은 글로벌 최고기업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내부 혁신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체제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4대 그룹의 한 부사장도 “삼성이 편법·탈법 이미지를 씻으려면 수단·방법은 상관없이 성과만 좋으면 된다는 기존의 성과지상주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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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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