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열려라 경제]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이 세상 부모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방식은 집집마다 많이 다르다. 1904년 노-일 전쟁 때 노기 마레스케 육군 대장은 뤼순(여순) 전투에서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일본군에도 엄청난 사상자가 나왔다.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수많은 부모들이 노기 대장의 귀국 소식을 듣고 항의하러 항구로 몰려갔다. 그러나 그들은 배에서 내리는 노기 대장을 보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왜냐하면 노기 대장이 뤼순 전투에서 전사한 두 아들의 유골함을 안고 배에서 내렸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이 1971년 세상을 떠났다. 유언장을 읽어보니 전재산인 유한양행 주식 36만주(현재 시가 2400억원)를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쓰라고 돼 있었다. 1만달러는 손녀 학비로, 그리고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공부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라”는 말만 남겼다. 그 밖에 남긴 것은 구두 2켤레, 양복 3벌, 만년필 1개, 지팡이와 파이프가 있었다. 유일한은 평소에 기업은 국가와 국민의 것이고, 기업가는 관리자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세상을 떠날 때도 그런 철학을 그대로 실천했던 것이다.
세계 1위의 부자 빌 게이츠는 약 500억달러의 재산 중 자녀 몫으로 1천만달러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말했다.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재산이 자식에게 돌아가는 것은 자식에게도 건설적이지 않습니다.” 거기에 감동하여 세계 2위의 부자 워런 버핏도 재산의 85%인 370억달러를 자선기금으로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버핏의 세 자녀도 아버지의 결정에 흔쾌히 동의했을 뿐 아니라 자기들도 거액의 재산 기부를 약속했다. 부전자전이란 말이 빈말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있던 지난 29일 오후 대법원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6 대 5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6명의 무죄 주장자 중에는 촛불 재판 개입으로 사퇴 압력을 받고도 버티는 신영철 대법관이 포함돼 있다. 이재용은 1994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61억원에 대해 16억원의 증여세를 물고 나머지 45억원을 갖고 에버랜드 등 비상장회사의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에 인수했다. 이재용은 이 과정을 통해 재판 이전에 이미 빌 게이츠의 자녀보다 100배 이상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다. 1심,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납득할 수 없는 무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이재용은 총매출 200조원의 삼성그룹을 지배할 면죄부를 얻은 셈이다.
이런 교묘하고도 상식 밖의 수법이 무죄라면 감옥 안에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겠다. 우리 사회의 8자 성어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누구의 책임인가? 법이 정의의 최후의 보루인지, 강자와 부자의 최후의 도피처인지를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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