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성장 대신 사회인프라·의식향상에 방점
5천억 육박했던 지출 점차 줄어 작년 3500억
“경제위기로 어려운 이웃 많은데…” 우려 목소리
5천억 육박했던 지출 점차 줄어 작년 3500억
“경제위기로 어려운 이웃 많은데…” 우려 목소리
국내 기업사회공헌의 최대 ‘큰손’인 삼성이 사회공헌 전략의 전면수정에 나섰다. 삼성은 기존의 사회공헌 지출 확대를 통한 양적 성장 전략을 버리는 대신 사회 인프라나 의식을 한 단계 높여나가는 ‘사회 혁신가’로서 구실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삼성봉사단은 최근 그룹 안팎의 사회공헌 전문가들로 연구팀(책임자 최환진 한신대 교수)을 구성하고, 새로운 사회공헌 전략과 전술 마련을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삼성은 그룹사회봉사단 창립 15주년인 10월19일까지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봉사단의 민경춘 전무는 28일 “사회의 진정한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내고 사회 인프라와 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라면서 “기업도 엔지오처럼 사회 혁신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담배와 도박이 없는 영안실 문화를 정착시킨 삼성병원을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고 있다.
삼성은 또 기존 사회공헌사업이 백화점식 보여주기에 그쳤다는 평가를 내리고,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차별화 전략에 힘쓸 방침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선임연구원은 “삼성 임직원조차 사회공헌 활동이 지나치게 백화점식이라는 인식이 많다”며 “사회공헌의 전략적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대표 사회공헌활동 프로그램을 확실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20년째 계속해온 ‘삼성어린이집’ 같은 대표사업들도 재평가되고 있다. 어린이집 건립사업은 가난의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는 이건희 전 회장의 특별지시로 시작된 사업이다. 봉사단의 고위임원은 “전국에 50여개를 지어 최고의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서 나름의 성과도 거뒀지만, 결국 다른 어린이집들에는 먼 나라의 얘기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삼성의 전략수정은 지난해 비자금사건 재판 이후 그룹 내부의 재평가 움직임에 따른 것이다. 삼성사장단협의회에서는 매년 수천억을 쓰는데도 정작 그룹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 아니냐며, 양적 성장전략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그룹의 비상경영 돌입과, 큰 재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의 마무리로 지속적인 규모 확대가 어려워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민경춘 전무는 “삼성병원 암센터와 미술관 리움 건립, 문화재단의 미술품 구입, 장학재단 설립, 대학 지원 등 사회 인프라 확충 차원에서 추진했던 큰 사업들이 대부분 마무리돼 사회공헌 규모가 계속 증가하기는 힘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의 전략 수정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있다. 당장 사회공헌 지출 축소에 대한 걱정이 크다. 삼성 사회공헌 지출은 90년대 말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30% 이상 증가세를 지속하며 한때 연간 5000억원에 육박했다. 이는 현대차, 에스케이, 엘지의 5~10배에 이르는 규모다. 삼성은 이미 지난해 사회공헌 지출을 3500억원 정도로 줄었다. 이는 최고치였던 2005년의 4926억원에 비해 30%나 격감한 것이다. 삼성은 올해는 사회공헌 예산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순수 사회복지 지출만 120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 역시 사회복지 지출이 가장 많았던 2006년의 2300억원에 비하면 50%나 적은 것이다.
사회복지계의 한 인사는 “삼성이 포장을 어떻게 하든 결국 핵심은 사회공헌 지출 축소 아니냐”며 “당장 경제위기로 인해 어려운 이웃이 늘어나면서 기업지원 요청이 커지고 있는 현실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기업의 한 사회공헌 담당자도 “연말 이웃돕기 성금액도 삼성이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재계의 현실”이라면서 “기업 사회공헌의 최대 큰손인 삼성의 영향의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그동안 삼성의 발목을 잡아온 경영권 불법승계 재판이 마무리단계가 접어들면서, 더 이상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사회혁신을 말하기 전에 내부혁신에 더 힘써야 한다는 주문도 한다. 삼성이 사회책임경영의 기본인 법적·윤리적 책임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사회개혁을 얘기하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회공헌정보센터의 곽대석 소장은 “사회책임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국내기업도 경제적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책임 경영을 통해 기업가치를 창출하는 글로벌 선진기업의 전략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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