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5일 서울 건국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열린 ‘희망플러스 통장’과 ‘꿈나래 통장’ 사업 출범 기념식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앞줄 오른쪽 셋째), 오명 건국대 총장(앞줄 맨 오른쪽) 등 참석 인사들이 통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저소득층 가구가 이 통장에 다달이 최대 20만원씩 3~7년 동안 저축하면 서울시와 후원 시민단체가 같은 액수를 통장에 추가로 적립해준다. 서울시 제공
풀리는 경기 커지는 자산격차 ③
단기적 소득보전서 자활능력 배양으로 정책전환 필요
복지지출·빈곤률 함께 낮출 수 있지만 정부 인식부족
단기적 소득보전서 자활능력 배양으로 정책전환 필요
복지지출·빈곤률 함께 낮출 수 있지만 정부 인식부족
계층간 자산격차의 지나친 확대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막으려면 이제라도 서둘러 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보다 앞서 자산시장의 급격한 팽창을 겪은 주요 나라들도 자산 양극화의 폐해를 혹독하게 경험한 뒤, 다양한 방어막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상대적으로 자산을 많이 보유한 계층의 불법·위법적인 투기 소득이 세무 당국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자산소득 관련 세제를 촘촘하게 정비하거나, 저소득 계층의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대책을 마련한 것도 한 방편이다. 경제위기라는 폭풍이 우리 경제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 불로·투기소득 뿌리뽑아야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을 막는 첫 실마리는 당연히 소득격차를 줄이는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 다달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자산격차도 벌어지고 결과적으로 계층간 소득격차마저 더 확대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훌륭한 일자리 대책이야말로 가장 좋은 자산 양극화 대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는 “자산시장이 중심이 된 금융 부문만 지나치게 팽창하다보면 오히려 실물 부문을 위축시킬 여지가 크다는 게 여러 나라의 경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라며, “자산시장으로만 흘러드는 시중자금이 생산적인 활동에 쓰이도록 자산시장 중심의 경제운용 방식에 대해 사회 전체 차원의 새로운 문제 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평가실장은 “무조건 자산을 많이 보유한다고 해서 세금으로 때려잡겠다고 나선다면 시장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것과는 별개로 고소득층의 불로소득이나 탈세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실장은 “관건은 출발점에서 최대한 동등한 기회를 모두에게 제공해주는 것”이라며, 정부가 자산 양극화의 폐해를 깊이 깨닫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소득보전에서 자산형성 지원으로 저소득층의 자산형성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은 또다른 방향의 해법이다. 자산형성의 동기(인센티브)를 북돋우자는 얘기다. 이태진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는 급한 대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조금 늘려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 중장기적인 물적자본을 축적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데만 목을 매는 대신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경원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실장도 “외환위기 이후의 소비자 금융 정책을 보면 금융기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며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제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쓸 돈이 필요한 저소득자들한테 대출 수단만 제공하면 결국 지출을 과도하게 유도하는 시스템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소득 빈곤보다 ‘자산 빈곤’이 훨씬 심각한데다 그 중요성 역시 갈수록 커진다고 강조한다. 자산 빈곤이란 흔히 자산 규모가 전체 구성원의 중위 수준을 밑돌아 앞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영위하기 힘든 상태를 뜻한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현재 중위 순자산(약4900만원)의 50%를 밑도는 ‘자산 빈곤’ 가구(4인가구 기준)는 총자산 기준 25.7%, 순자산 기준으로는 28.3%에 이른다.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하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32.4%(순자산 기준)가 사실상 자산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영국, 대만 등 주요 나라들이 다양한 자산형성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것은 이런 문제를 앞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 정책 당국자들의 인식 낮아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개인개발계좌(IDA) 등과 비슷한 자산형성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한 실정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시범사업을 벌인 뒤 2009년부터 자산형성 지원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기로 했던 참여정부 때의 계획도 흐지부지된 상태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자산형성 지원사업과 관련해 당장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런 데는 예산 부족뿐 아니라 관련 정책 당국자들의 인식이 뒤처진 것도 한몫했다. 이태진 부연구위원은 “정부는 보통 단기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소득보전 등의 정책에는 적극적이지만, 장기적으로 저소득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산형성 지원사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인식도 낮고 의욕도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관련 사업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지자체들이 자활기금에서 돈을 끌어다가 자산형성 지원사업을 벌일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희망플러스’ 통장사업을 벌여 근로 저소득자 가구가 매달 5만~20만원씩을 3년 동안 저축하면 시비와 민간단체의 후원금을 합쳐 동일한 규모의 금액을 적립해주고 있다. 대구 달서구(행복나눔), 경남 창원(희망두배로), 경기 남양주(희망나무), 경기 평택(기쁨두배로) 등 지자체들도 움직이고 있다.
유경원 실장은 “자산형성 지원사업이 뿌리내리려면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므로 이들에게도 일정한 동기부여를 하는 게 필요하다”며 “휴면예금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진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지원과 별개로 재정교육과 상담 등을 병행해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며 “대상자들에 대한 단순한 자금지원에만 그치지 말고 적극적인 종합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최우성 김기태 기자 morgen@hani.co.kr<끝> 최우성 김기태 기자 morgen@hani.co.kr
우리나라 자산빈곤 가구 급증·서울시의 자산형성 지원사업 개요
주요 나라의 자산형성 지원사업
최우성 김기태 기자 morgen@hani.co.kr<끝> 최우성 김기태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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