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정권’의 대기업 수사
MB “반서민 경제 엄단” 밝히자 공정위·검찰 바빠져
재계 “서민이미지 위해 수사”…‘관치’ 부작용 우려도
MB “반서민 경제 엄단” 밝히자 공정위·검찰 바빠져
재계 “서민이미지 위해 수사”…‘관치’ 부작용 우려도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조사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 수사는 동시다발적 압수수색과 구속 등 전광석화처럼 속도를 낸다. 대한통운과 두산인프라코어뿐이던 수사 대상도 서너개 이름이 추가로 거론되며 더 늘어날 조짐이다. 공정위 조사도 엘피지·종합병원·우유·제빵·주유소로 확대중이다. 재계는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몰라 초긴장하는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비즈니스 프랜들리’(기업 친화)를 내걸고 규제 완화와 감세 등 기업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줄 것처럼 했다. 친기업을 강조한 현 정부에서 대기업 ‘사정한파’라는 말이 나오는 게 기이하게 들리지만, 원칙적으로 기업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서민·중소기업을 울리는 짬짜미(담합)나 불공정행위에 대해 정부가 엄히 대처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불법혐의가 명백한데도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경영과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이비 경제논리’로 제동을 거는 것은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의 사정바람은 순수하게 보기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공정위 조사는 지난 10일 대통령이 서민경제를 어렵게 하는 기업에 대해 엄단 의지를 밝힌 직후인 14일부터 본격화했다. 이후 공정위에서는 외부의 조사 요구까지 쇄도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신규 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검찰 수사도 공정위에 이어 바로 시작됐다. 특히 검찰의 수사 배경에 의혹의 시선이 쏠린다. 검찰은 올해 초부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인수합병으로 급성장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뒷조사를 해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민단체의 한 간부는 “검찰이 몇 달 전에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에 관해 ‘무엇이든 비리혐의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공정위와 검찰은 “법대로 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따라서 기업의 위법성뿐 아니라 수사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이번 대기업 사정바람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정부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다목적카드라는 게 경제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전경련의 한 임원은 “정부로서는 서민들을 위해 뭘 해주려 해도 예산 때문에 쉽지 않다”며 “부자나 기업의 혜택을 줄이거나, 대기업을 손봐줌으로써 대리만족을 시켜주려는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그동안 정부는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투자 확대 등 대기업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해왔지만 성과는 없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 생리를 잘 아는 대통령이 당근과 채찍을 함께 쓰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바람 이후 기업 쪽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가스 공급업체들은 서민물가를 위해 10월 가격을 동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정부로서는 당장의 효과에 미소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최정표 건국대 교수는 “기업들이 가격이나 투자 결정을 할 때마다 정부 눈치를 보면 시장경제의 강점은 사라지고, 궁극적으로 경제회복도 늦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 4대그룹 계열사의 임원은 “엠비가 친시장을 말하지만 실제는 관치도 이런 관치가 없다”며 “지난해 52개 품목에 대한 엠비물가 단속도 결국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맹목적 친기업 정책을 펴는 것도 문제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업의 팔목을 비트는 것은 그에 못지 않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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