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에 자리잡은 다롄조선소 입구에 ‘국제일류 선박그룹’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 서 있다. 국영기업 중국조선산업그룹(CSIC)이 운영하는 이 조선소는 중국 내 선박건조량 1위다.
전체 물량의 58% 차지…5~20년 뒤 세계1위 전망
“저가 위주 한계…핵심 기술은 한국 못미쳐” 평가
“저가 위주 한계…핵심 기술은 한국 못미쳐” 평가
용쟁호투(龍爭虎鬪). 요즘 세계 조선산업의 판도를 보면, ‘세계의 용’ 중국이 ‘세계 1위’인 한반도 호랑이를 추격하는 기세로 일컬을 만하다.
조선·해운 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의 집계로는, 지난달 중국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67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전체 수주물량의 58.1%를 차지했다. 6월 이후 석달째 1위다. 반면 지난달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36.9%에 그쳤다. 현재 업계가 확보해 놓은 일감을 뜻하는 수주잔량도 한국 5560만CGT(34.4%), 중국 5500만CGT(33.4%)로 차이가 고작 1%포인트다.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준다’는 국내 조선업계 우려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다. 한국수출입은행 박세근 책임조사역은 “자국 수요 확대에 힘입어 중국이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기술이 쌓이면 한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선박 건조능력 세계 1위’를 목표로 내걸었다.
지난 16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한복판에 자리잡은 다롄조선소. 들머리에 걸려 있는 ‘국제일류 선박그룹’이라는 표지판에서 중국의 ‘야망’이 엿보인다. 국영기업 중국조선산업그룹(CSIC)이 운영하는 다롄조선소는 110년 된 역사로 보나, 선박건조량으로 보나 중국 최고다. 조선소는 활기가 넘쳤다. 116만㎡나 되는 야드에 각양각색의 블록(선박의 부분을 구성하는 철구조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완성된 벌크선 4척이 진수를 앞두고 시운전이 한창이다. 뒤편에선 군함이, 자동차로 5분쯤 걸리는 신다롄조선소에서는 해양플랜트들이 형체를 차츰 갖춰가고 있다.
다롄조선소에 한국산 기자재를 납품하는 ㈜한국대성무역 다롄대표처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외국 선주 발주 물량을 대거 끌어다줘, 2012년 상반기까지 일감을 채워놓았다”고 전했다. 다롄조선소는 세계적인 ‘수주 가뭄’에도 지난달 이란의 국영석유회사로부터 초대형 유조선(VLCC) 6척을 따낸 바 있다.
다롄시에서 150㎞ 떨어진 창싱다오도 또다른 초대형 조선산업단지로 떠오르고 있다. 에스티엑스(STX) 다롄조선소가 이미 터를 잡은 데 이어, 싱가포르와 일본의 조선회사가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다. 선박기자재단지 조성을 맡은 다롄선박기자재산업원유한공사 최국철 투자총감은 “창싱다오가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기지가 될 것”이라며 “중국 선박기자재 국산화율이 30%대 초반이어서 한국 기자재업체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산업 급성장의 배경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코트라 다롄코리아비즈니스센터의 윤선민 과장은 “2007년 조선산업 중장기 발전 정책을 바탕으로 정부가 기술개발과 금융 등에서 강력한 지원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국영은행인 중국수출입은행은 중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선주에게 선수금의 90%가량을 대출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금 사정이 빠듯한 선주라면 획기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계는 아직 여유로운 모습이다.
한국조선협회 한장섭 부회장은 “최근 중국이 수주한 물량 대부분은 자국 발주 물량을 챙겨간 것일 뿐”이라며 “벌크선 등 저부가가치 선박 위주라 수주 금액에선 아직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인 한국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국 바깥에서의 수주 실적도 대부분 ‘저가 수주’의 결과다. 다롄조선소가 수주한 초대형 유조선 1척당 가격은 클락슨 기준 선가인 1억1400만달러보다 12.3%나 낮은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걸릴까? 중국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을 점친다.
최국철 투자총감은 “똑같은 선박을 만들더라도 한국은 한달, 중국은 열달 걸릴 만큼 아직 핵심 기술이나 생산력에서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중국이 상하이 푸둥에서 자국 기술로 처음 건조했던 액화천연가스(LNG)선은 1년 넘게 시운전만 하다가, 결함이 생겨 다시 도크 안으로 수리하러 들어가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납기가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일도 잦다. ㈜한국대성무역 다롄대표처 관계자는 “일반상선에선 중국이 한국을 거의 따라왔지만, 외형적인 덩치만 커졌을 뿐 아직 고부가가치 선박이나 핵심 부품인 엔진을 만드는 기술 등에선 한국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과 중국 조선산업 간 격차를 줄이는 속도는 ‘기술’에 달려 있는 셈이다.
다롄/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중국 조선업, 한국 맹추격…석달째 수주량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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