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국설 솔솔 김우중씨 공과 어떻게 볼 것인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최근 측근들을 통해 검찰과 언론 등에 귀국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힘에 따라 조기 귀국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와 불법대출 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여서 사법처리가 예상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이른바 ‘세계경영’으로 상징되는 그의 경제적 공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인 김우중의 공과 과를 함께 짚어봤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김 전 회장의 공과에 대한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방만한 차입경영과 엄청난 부채로 세계적 규모의 부실을 키웠다는 비난과 함께 외환위기 처리과정에서의 희생양이란 동정론도 존재하는 등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한 때 ‘도망자 김우중’에 대한 단죄론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측근들의 귀국 정지작업에 이어 그의 재평가를 위한 ‘김우중 토론회’까지 추진되는 등 변화의 조짐도 일고 있다. 1995년 대우에 입사했던 ‘386운동권’ 출신들로 구성된 세계경영포럼의 김윤 대표는 31일 “김 전 회장에게 많은 잘못도 있지만 그가 추구했던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과 활동방식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재평가 공론화’를 주장했다. 단죄론 한켠 재평가론 고개 70, 80년대 김 전 회장은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다. 67년 대우실업을 세우면서 시작된 ‘대우신화’는 70년대 말 조선·자동차 등 중공업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며 90년대 세계경영으로 이어졌다. 자본금 500만원짜리 기업을 창업 30여년 만에 재계 2위 그룹으로 키운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수출’이었다. 한 측근은 “정경유착이란 지적도 있지만, 중공업과 조선, 자동차 분야에서 부실기업을 인수해 괄목할만한 수출 기업으로 끌어올린 경영 역량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측근은 “당시 수출전문기업으로서 내세웠던 수출·성장·고용은 지금 우리경제의 화두로 돼있지 않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의 국제경영감각과 승부사 기질을 높이 산다. 4대그룹의 한 임원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이 물밀듯 들어와 국내 자본과 기업을 잠식하고 국부유출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달리, 김 전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며 국외에서 국부를 창출하려 하지않았느냐”고 말했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그룹은 83조원의 자산에 62조원의 매출을 일으키며 41개 국내 계열사와 396개 국외법인을 거느렸다. 대우가 구축한 옛 글로벌 망의 붕괴를 아쉬워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글로벌 경쟁력과는 ‘거리’ 그러나 김 전 회장이 부르짖은 세계경영은 외형 확장을 위해 무리한 차입에 매달리는 바람에 안에서부터 곪아갔다. 배준호 한신대 교수는 “김씨는 세계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사기사건의 주범이자 실패한 기업인의 전형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대우 패망의 실체는 결국 황제식 선단경영에 의존한 ‘빚더미 경영’의 몰락이었다는 것이다. 대우의 세계화는 기술과 품질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경쟁력과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의 외형 키우기식 경영방식은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그는 기업들이 긴축경영에 돌입한 것과는 반대로 쌍용차를 인수하고 고금리 자금을 끌어들여 계속 수출 주도형 경영에 집착했다. ‘대우사태’는 국민경제에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대우의 부채 60여조원은 금융권 부실로 이어졌고 다른 기업의 연쇄도산을 불렀다.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나 회수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그럼에도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은 “세계경영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을 감안해 그를 재평가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또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 규모가 최소 서너배는 부풀려졌다며 억울해한다. 그러나 6년째 국외를 전전하며 여론 떠보기를 펼치는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한때 한국경제를 주물렀던 재벌총수로서 진작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할텐데, 정치적 사면 바람을 타고 여론을 살피고 있는 것은 비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2001년 5월 41조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9조2천억원의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 등으로 대검 중수부에 기소중지된 상태다. 최근 대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23조원의 추징금과 함께 대우 계열사 사장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 역시 공범으로 인정된만큼 돌아오면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럼에도 측근들이 귀국 가능성을 타진하고 다니는 것은 김 전 회장이 ‘더이상 미룰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동남아를 오가며 5년7개월 동안 유랑생활을 해온 그가 더이상 기댈 곳은 없었던 것일까.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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