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있는 일반 재벌그룹과 지주회사체제 비교
지난해 19개사 전환…공정위 “지배구조 개선효과” 주장
“전환 요건 느슨해 오히려 지배권 강화 부작용 초래” 지적
“전환 요건 느슨해 오히려 지배권 강화 부작용 초래” 지적
지주회사제는 재벌 총수를 위한 ‘트로이의 목마’인가?
재벌의 후진적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할 대안으로 제시됐던 지주회사제가 정부의 애초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9월 말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일반지주회사 70개, 금융지주회사 9개를 합쳐서 모두 79개에 이른다고 28일 밝혔다. 지난 한 해 동안만 두산, 프라임 등 19개가 늘어날 정도로 급증세다. 코오롱, 한진해운 같은 중견 재벌도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중이다. 이는 정부가 지주회사제를 재벌 지배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해 관련 규제를 계속 완화하는 등 유인책을 쓴 결과로 분석된다. 지주회사제는 소유구조가 수직 형태여서 순환출자가 없고, 계열사 간 관계가 단순하고 투명하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70개 일반 지주회사의 총수일가 지분은 평균 43.5%로, 자산이 5조원 이상으로 상호출자제한을 받는 31개 민간재벌의 총수일가 지분율(4.51%)에 비해 10배 가까이 높다. 고병희 공정위 기업집단과장은 “지주회사제는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만 갖고도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소유-지배 간 괴리가 상대적으로 덜해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지주회사의 자회사나 손자회사 지분율은 모두 70%를 넘어, 법상 요건인 20~40%보다 훨씬 높다.
공정위는 지주회사제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한다. 지주회사에 속한 자회사·손자회사(계열사)는 모두 892개로, 지주회사 한 곳당 11.3개꼴이다. 총수가 있는 일반 재벌 31개의 평균 계열사 수인 31.7개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재무구조도 일반 재벌에 비해 견실하다. 일반지주회사 부채비율은 46.4%로, 총수가 있는 일반 재벌 31개의 111.6%에 비하면 절반 이하다.
하지만 지주회사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조건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무엇보다 총수일가의 소유-지배 간 괴리가 일반 재벌과 큰 차이가 없어 재벌 소유지배구조 개선 효과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총수일가의 지주회사 지분율은 높지만, 자회사·손자회사 보유 지분은 거의 없으면서도 실제로는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탓에, 소유-지배 간 괴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룹의 전체 또는 일부가 지주회사체제인 엘지·에스케이·지에스·두산·엘에스 등 11개 일반 재벌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5.15%로, 총수 있는 일반 재벌의 4.51%와 별 차이 없다. 또 이들 11개 지주회사체제 재벌의 평균 계열사 수(39.3개)와 부채비율(131.23%)도 다른 일반 재벌에 비해 오히려 더 많거나 높아, 경제력 집중 억제나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부 재벌은 지주회사체제와 비지주회사체제를 혼용해서 총수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기형적 소유구조를 운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에스케이그룹이다. 에스케이그룹의 지주회사는 에스케이㈜다. 하지만 실제 그룹을 지배하는 것은 지주회사체제 밖에 있는 비상장계열사인 에스케이시앤시(SKC&C)다. 시앤시는 지주회사의 주식을 31.82% 갖고 있어, 사실상 ‘상왕 지주회사’인 셈이다. 총수일가의 에스케이㈜ 지분은 다 합쳐도 0.06%에 불과하지만, 계열사들과 함께 시앤시 지분을 100% 갖고 있어, 시앤시→에스케이㈜→나머지 계열사로 이어지는 사슬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한다.
지주회사 전환 요건들이 규제완화 압력에 밀려 계속 느슨해지는 것도 문제다. 공정위는 이번 정기국회에 일반지주회사도 금융 자회사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 개정안을 낼 계획이다. 재계는 아예 현행 지주회사제의 3대 뼈대인 자회사의 다른 계열사 출자 금지(수직적 출자구조 유지), 3단계 이상 출자 제한, 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최소 지분율 요건에 대해서도 완화·폐지를 요구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정부가 지주회사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재벌들이 종전 소유구조를 거의 변화시키지 않고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있다”며 “지주회사제가 재벌의 소유구조 개선보다는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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